제목 | ◆ 요셉 신부님과 매일 복음 묵상을 - 그리스도 왕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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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현아 | 작성일2008-11-23 | 조회수73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왕직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셔서 사랑을 실천하며 산 이들은 구원하고 자신만 위하며 산 이들은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오늘 복음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왕직을 묵상하며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와 일치되며 우리도 누리게 된 왕직에 대해 설명해보려 합니다. 세례 받은 누구나가 그리스도의 왕직과 예언직, 사제직을 이어받는 것인데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왕입니다. 왕이란 강하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무엇이 참으로 강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참다운 왕직이 무엇인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왕들은 누가 있습니까? 그리스에는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있습니다. 그는 인도까지 점령하고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죽을 때 자신의 손을 관 밖으로 내 놓아 사람들이 보게 해 달라며 이렇게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한 손에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뿐이오.” 모든 천하를 한 손에 쥐었지만 결국 허탈한 인생이었습니다. 로마에는 시저가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정복자로서 세계가 두려워하는 인물이었으나 몇몇 집정관들의 배신에 의해 칼에 찔려 살해당하고 맙니다. 많은 왕들을 무릎 꿇렸으나 친구들에게 배신당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제는 열세 살의 나이에 왕이 되고 23세 때 영토 확장작업에 착수했으며 39세 때 세상을 통일하고 상상도 못할 만큼 큰 아방궁이란 궁궐을 짓고 그 유명한 만리장성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도 두려웠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서시라는 사람에게 소년 소녀 3천명과 많은 보물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게 하여 동해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섬으로 가서 불로장생의 약초와 약을 구해오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런 노력들을 했는데 유생들이 그것을 비웃었다 하여 수많은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 460명을 생매장 시킵니다. 이것이 분서갱유입니다. 물론 그도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왕으로 보았으나 사실은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왕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큰 왕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병과 배신과 죽음도 두렵지 않은 강한 힘을 지닌 왕이 되는 것입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로마 황제에게 끌려갑니다. 로마 황제는 교황이 남기고 간 교회의 재산을 로마에 바치라고 회유합니다. 라우렌시오는 그러겠다고 하며 교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고는 그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이라고 하며 황제 앞에 데려갑니다. 황제는 너무 열이 받아 그를 산채로 석쇠에 구우라고 합니다. 지글지글 구워지던 라우렌시오는 사형집행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한 쪽은 다 구워졌으니 뒤집어 주시오!” 누가 가장 강한 사람입니까? 죽음을 두려워하던 황제들입니까, 아니면 순교를 기쁨으로 여겼던 성인들입니까? 예수님도 왕으로서 가장 강한 분이셨습니다. 겉으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처럼 약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실 수 있었음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강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식적으로 왕이 되신 때는 바로 예수님의 세례 때였습니다. 그 분이 세례를 받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에서 성령님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 분 위에 내려오시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하며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라 4,6)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 됨으로써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그렇게 왕이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 되는 것이 곧 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도 항상 왕이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기신 것을 아셨다고 합니다. 즉, 모든 권력이 당신의 손에 들어왔음을 아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 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요한 13,3) 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의 모든 힘이 당신에게 온 것을 아시고 아들은 어떤 일을 하였을까요? 권력으로 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정복하기를 원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그 힘으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십니다.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요한 13,4-5) 이는 왕직이란 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권위나 힘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발을 닦아 주는 것은 노예들이나 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당신이 왕이시기에 노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낮아짐 안엔 세상 왕들은 할 수 없는 강함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발을 씻어준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의 왕들을 꿈꾸며 누가 더 높아질 것인가 만을 궁리합니다. “제자들 사이에서 누구를 제일 높게 볼 것이냐는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시고” (루카 22,24) 왕직의 진정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 식탁에 앉은 사람과 심부름하는 사람 중에 어느 편이 더 높은 사람이냐? 높은 사람은 식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와 있다.’” (루카 22,25-27) 낮아짐 안에 높음의 신비가 있고 약함 안에 강함의 신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강한 왕의 모습은 바로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계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눈 깜짝할 사이에 당신을 못 박는 이들을 잿더미로 만드실 수 있는 힘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겪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어떤 누구도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가장 강한 왕인 것입니다. 낮아짐이 낮아짐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 오셔서 심판하듯이 당신 성령의 힘으로 낮아짐의 삶을 살 줄 알았던 이들을 높여주십니다. “너희는 내가 온갖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견디어 왔으니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왕권을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주겠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루카 28,30) 따라서 이 세상에서 남들보다 낮아지고 남들을 섬길 줄 알았던 사람들이 하느님나라에서는 참된 왕의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승천하셔서 천상 모후의 관을 쓰셨던 이유는 그만큼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받들며 살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왕들도 자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이긴다는 의미는 교만과 육체의 본능을 이기는 것입니다. 힘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약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내 자신을 이길 수 있고 그래서 육체의 본능에 끌려 다니는 노예 생활에서 벗어 날 수 있고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참 자유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있지요? 아직 완전히 내가 나의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장 강한 왕은 나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왕입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이번 주, 한 해 동안 정말 하느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고 힘 있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았는지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해를 맞을 준비를 합시다. ☆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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