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담화는 참행복 선언(5,3-12)으로 시작하여 최후의 심판을 내다보며 끝납니다. 마지막까지 이웃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7,28 이하; 8,8 이하; 9,6; 21,23 이하) 25장의 이 심판 대목에 이르러 예수님의 전권은 정점에 이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31절) ‘영광·천사·옥좌’는 하느님의 현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배와 왕권과 존엄을 위임받은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최후의 심판을 얘기하지만 그다지 호기심을 끌지도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도 않습니다. 미래에 대해 꾸밈없이 전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완성에 이를 수 있고, 또한 어떠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리석고 미련하게 우리의 능력과 힘을 낭비할 것인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를 당장 찾아 나설 것인지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32절) 팔레스타인에서는 양과 염소를 함께 기르다가 밤이 되면 목자가, 따뜻한 곳을 필요로 하는 염소를 양과 갈라놓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런 구분이 제물로 바칠 새끼 염소를 다른 가축들에서 골라내는 작업이라고 해석합니다. 어떻든 심판은 이렇듯 하나의 구분 작업입니다. 선한 자와 약한 자들로 이루어진 교회 역시 이런 구분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갈라놓기 시작하십니다. 당신이 정하신 기준에 따라 판결을 내리십니다.
그 기준이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십니다.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으십니다. 병들었을 때 병을 고쳐주거나 감옥에 갇혔을 때 풀어주라는, 어렵고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마음만 있으면, 조금만 애쓰면 도울 수 있습니다.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운명에 동참해 주길 바라십니다. 재물이나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열려 있고 공감하는 자애로운 마음을 원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40절) 예수님은 가까운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순명하는 이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12,48-50) 이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부활하신 뒤에는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십니다.(28,10) 예수님은 보잘것없고 나약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 뒤에 서 계십니다. 그들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도움을 청하십니다. 우리는 단지 한 사람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과 관계하는 것입니다. 각자 안에 계시는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영원한 품위를 지녔고 무엇으로도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일(육화)의 절정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34절) 예수님이 오른편에 세운 이들은 열린 눈과 연민의 정으로 세상을 산 사람들입니다. 단지 곤경에 처했기 때문에 그를 도왔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도움의 대가가 무엇인지, 돌아올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에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의 필요를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다른 이의 삶을 북돋아 준 그들의 노력은, 삶의 가치와 무가치를 결정하시는 예수님께 완전히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왼편에 세워진 이들은 하느님 면전에서 추방됩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41절) ‘영원한 불’이란 하느님의 축복과 생명에서 제외되어 겪는 고통입니다. 그들은 인자하신 아버지의 공동체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기주의자들과 좌절과 증오에 가득 찬 이들로 이루어진 무리에 떨어집니다. 이러한 결정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것이 됩니다.
본문 전체에서 후렴처럼 반복되는 자선 행위는 결코 영웅주의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남을 도울 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내세우고 싶은 마음, 자신의 결점을 봉사를 통해 메우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선행을 베풀더라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나 봅니다. 도움이란 다른 사람을 도움 받을 이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품위를 발견하도록 일으켜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웃에 계속 관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이자 도전입니다. 물론 모두를 돕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아도취적 기만을 멀리하고 이웃을 형제와 자매로 존중하는 것이 이웃 사랑의 첫걸음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느님을 몰라뵈었고 언제 지나쳤는지 하느님 앞에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앞에 전전긍긍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심판은 모든 것의 정체를 벗기고 본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심판은 진실만을 보여 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손에 넘겨져 인간의 심판을 통과하셨습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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