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장 시끄러운 소음 | |||
---|---|---|---|---|
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08-11-23 | 조회수76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마태오 25:31-33)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 루이스(C. S. Lewis)는
가장 시끄러운 소음은 듣지 않으려고 애쓸 때 생긴다고 말했다.
밤 늦게 짖는 개, 잠이 오지 않을 때
끊임없이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소음이다.
흐르는 시냇물도 바위와 같은 장애물을 만날 때까지 작은 소리를 낸다.
기도는 시냇물과 같아서 중단하면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게 된다. 우리는 이 소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지만 소음을 들으면서도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소음을 애써 무시하려고 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소음이 끊임없이 들리게 된다.
기도 중에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면 소음이 들리지 않아야 한다.
몰아(沒我)의 경지에 돌입하지 못하니 소음이 들리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한 말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마태오 25:31-46)에서는 최후의 심판 때를 말하고 있다.
양과 같이 착한 사람과 염소와 같이 악한 사람으로 나누어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하셨다.
염소는 희생제물로 쓰는 것이 관례였다.
기준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했냐는 것이다.
이웃의 작은 이들을 예수님을 대하듯 하였냐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는 묻지 않으신다.
“종교가 뭡니까?”하는 한 기자의 질문에 원불교 이선종 교무는
“종교는 뱀이다”라고 답했다. 이 교무가 부연 설명을 했다.
“뱀을 잡을 때 어디를 잡아야 합니까? 허리를 잡나요? 꼬리를 잡나요? 아닙니다.
머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물리지 않죠. 허리나 꼬리를 잡으면 되려 물리고 맙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죠.”
어떤 종교든 옳게 믿지 않으면 오히려 사설(邪說)에 얽매이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옳게 믿지 않으면 하느님 말씀도 소음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말도 될 것이다.
옳게 믿지 않으면 ‘회칠한 무덤’에 갇히게 된다.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마태오 23:33)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늘의 진리를 ‘이(理)’라고 하고 땅의 진리를 ‘성(性)’이라고 한다.
이성(理性)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다.
“분수를 알고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착한 일을 하고 맡은 소명을 부지런히 다하고
사후(死後)에 죄를 남기지 말고 의롭게 살아 복덕을 많이 쌓아서
자손에게 남겨 주고 사랑을 듬뿍 베푸는 일”이 땅에서 해야 할 우리들의 일이다.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 축일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
그리고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고백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고백하면 그리스도는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숱하게 많이 들어 왔던 이 진리를 다시 기억하며 실천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교훈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