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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60) 성지가지를 수거하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3 조회수827 추천수2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08 오후 7:33:17 

 

 
         (60) 성지가지를 수거하며

                                      이순의

 

 

                            

 

 

ㅡ전례ㅡ

9시 학생미사에 가는 아들에게 주보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 했다.

주보에는 성지가지를 수거하고 곧 사순절이 시작된다는 공지를 하고 있다.

미루다 보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십자가를 내렸다.

아들의 방과 내 방, 그리고 거실 겸 주방의 커다란 십자가 까지.

작년, 주님의 입성 날에 부서져 가루가 되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담아 걸어둔 성지가지를 내렸다.

누렇게 바랜 잎사귀는 십자가 모양으로 초록을 간직한 채 말라있다.

십자가와 성지가지만 내려 온 것이 아니다.

그 동안에 쌓인 먼지들도 함께 내려왔고, 혼배반지도 내려 왔다.

먼저 죄송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닦았다.

성지가지가 아니라면 주님의 십자가를 과연 몇 번 정도 내려서 닦아드릴 것인가?

생각해 보니 게으른 무관심이 창피하다.

송구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만회하려고 정성을 다해 때를 밀었다.

그리고 다시 혼배반지를 달아매 드려야 한다.

18년 결혼 생활동안 수도 없이 많았던 굴절된 인생에서 어렵게 지켜진 성사다.

몇 번을 팔러 갔다가 차마 혼배반지만은 팔지 말자고 절규하다시피 지켜온 순간들!

손가락 굵어진 마디에 이제는 끼워지지도 않지만

그 의미는 바라볼 수 있음에 신령스럽다.

손가락 반 마디만큼이라도 끼워볼 수 있다는 사실이 울컥한 감동이다.

성스런 혼인성사의 성품을 지키는 보물 상자는 십자가다.

성지가지를 수거하면서 예수님 목욕도 시켜드리고, 십자가의 구정물도 닦았다.

그리고 처절하게 지켜온 우리 성가정의 징표를 다시 한 번 어루만져 본다.

찌그러진 모양만큼 우리네 삶도 굴곡이 많았지만 그래서 신비롭다.

아직 성사의 은총을 함께하고 계셔서!

우리 부부 하늘이 갈라놓는 날 하나씩 들고 가자.

천국에 가서 짝궁을 찾을 때 서로 맞춰보자.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혼인성사를 이렇게 지켰다고!

성지가지를 수거하며 교회의 전례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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