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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24일 야곱의 우물- 루카 21, 1-4 묵상/ 고개 숙인 여인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4 조회수678 추천수5 반대(0) 신고
고개 숙인 여인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루카 21,1-­4)
 
 
 
 
◆예수님은 성전에서 헌금함에 돈 넣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좋은 옷을 입고 온 부자는 보란 듯 과시하며 당당하게 돈을 넣지만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바치는 모습은 주눅 들고 어설퍼 보인다. 죄라도 짓는 양 몰래 넣고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20여 년 전쯤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한밤중에 로스앤젤레스시 인근의 조금 험한 동네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으려고 잠시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허름한 백인남자가 어둠 속에서 다가오더니 휴지조각을 들고 내 차의 유리창을 닦기 시작했다. 귀찮은 마음에 주머니를 뒤졌더니 링컨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1센트 동전 한 닢이 달랑 나왔다. 보통 적선하는 데 25센트 동전을 내놓던 시절인데 1센트라니. 아무리 돈이 아쉬운 걸인이라도 코웃음 칠 일이었지만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동전을 내밀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받아 주머니에 넣고는 계속해 더욱 열심히 차창을 닦았다. 나는 갑자기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지갑을 꺼내 1달러 지폐를 그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마약하지 마시오.”라고 훈계를 덧붙였다. 그는 돈을 정중히 받으면서 “아니, 나 마약 안 해요. 정말 배가 고파서 돈이 필요해요.”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로등에 비친 주름 깊은 남자의 얼굴이 몹시 피곤해 보였다. 나의 앞선 판단과 행동이 더 부끄러워졌다.
 
가난한 과부가 내놓은 렙톤 두 닢의 액수는 보잘것없지만 그녀가 소유한 전 재산이었다. 그것을 하느님 앞에 드리는 것은 당장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온 존재로 느끼며 알고 있었다.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는 일은 희생이지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가 아니다. 그렇게 바치는 희생의 상급으로 돌아오는 선물은 무엇일까? 생활의 안전이나 성공, 윤택한 삶의 보장이 아니라 희생 자체가 상급이라는 것을 깨닫는 은총이 주어진다. 피와 땀, 생명까지 걸고 희생을 바쳐 얻는 유일한 선물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신뢰가 없으면 진정한 자선도 희생도 없다.
 
하느님은 보고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하느님을 기만하는 오만한 이들의 행동에 안타까운 절망을 느끼신다. 그들이 물러난 다음 마지막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인 과부가 나타난다. 예수님은 그녀가 보잘것없는 재물을 털어놓고 숨죽여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세상을 구원하러 나갈 힘을 얻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 자신도 우리보다 넉넉하고 많이 가진 자들의 위상을 눈이 부시게 쳐다볼 때는 스스로 위축될 뿐이다. 오히려 우리보다 못한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살아갈 위안을 준다.
 
희망과 용기를 얻으려면 낮은 곳을 살펴야 한다.
원영배(미국 로스앤젤레스 대교구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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