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요셉 신부님과 매일 복음 묵상을 - 연중 제 34 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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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현아 | 작성일2008-11-25 | 조회수779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연중 제 34 주간 수요일 - 힘의 근원
제가 로마에서 머물고 있는 기숙사는 포르투갈 신부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포르투갈 기숙사입니다. 포르투갈 신부님들 중에서 일본에서 선교하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저에게 일본의 카톨릭 작가인 엔도 슈사꾸의 소설 <침묵>을 읽어보았냐고 했습니다. 저는 이름도 못 들어봤다고 했는데 옆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조금 창피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줄거리는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이 소설은 포르투갈, 로마, 일본의 사료를 정밀히 조사한 실화 역사소설입니다. 페레라(Christopher Ferreira) 신부는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던 국제적 인물이었는데, 그가 고문에 못 이겨 배교했다는 보고가 포르투갈에 전해졌습니다. 격분한 그의 제자 세 명이 소식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생명을 걸고 일본으로 잠적해 들어갑니다. 그 중 한 명인 로드리고(Sebastian Rodrigues)가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그도 결국은 체포되어 '후미에' 앞으로 끌려갑니다. '후미에'는 예수 상이 새겨진 동판을 나무판에 붙인 것인데,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예수를 버린 것으로 간주하여 살려주었던 것입니다. 로드리고 신부가 후미에 앞에 섰을 때, 그것은 너무나 많이 밟혀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그러진 얼굴이 로드리고 신부에게는 울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 몹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 같이 보였습니다. 그가 유럽에서 보던 왕관을 쓴 예수, 백인들이 편안하게 믿는 승리자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고통 받고 함께 울고 함께 괴로워하는 예수였습니다. 주저하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후미에의 예수가 말합니다. "나를 밟아라. 나는 본래 밟히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냐? 나를 밟을 때 네 마음이 아플 것이다. 마음으로 아파해 주는 그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주여, 저는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있는 것을 원망했습니다." "나는 침묵한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리고가 예수 상을 밟는 순간 새벽닭이 웁니다. 그 옛날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할 때 베드로의 괴로움을 예수께서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며 함께 괴로워하신 것처럼. 줄거리만 읽어도 마음이 찡해옵니다. 아마도 장렬하게 순교한 분들보다 로드리고 신부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과 더 흡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정말 그 옛날 순교자들이 그 큰 고난을 이겨내면서 순교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순교할 자신이 없습니다. 한 예를 들어볼까요? 1840년 1월 30일 순교하여 103위성인 가운데 오른 허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포도청에 끌려갔는데 심한 혹형으로 배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을 뉘우치고 즉시 재판관을 찾아가서, "나는 죄를 지었으나 지금은 그걸 뉘우칩니다. 입으로는 배교하였으나 마음으로는 교우였고 지금도 교우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재판관이 그를 다시 옥에 가두었는데 옥사장들이 그를 괴롭히며, "말로 취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네가 뉘우친다는 표를 우리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대소변이 가득 찬 통을 가리키며, "네가 참으로 뉘우친다면 여기 사발이 있으니 저 통에 있는 것을 퍼서 먹고 마셔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허임은 서슴지 않고 그것을 한 사발 듬뿍 퍼서 단숨에 삼켜버리고 다시 뜨려고 하니 옥사장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만 두어라, 그만 둬. 그렇지만 여기 십자가가 있으니 네가 배교하기 싫거든 십자가 앞에 엎드려라." 허임은 꿇어서 이마를 땅에 대고 조아리며 배반하였던 예수를 온 마음을 다해 통회하고 예배합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배교를 취소하고 심한 매질과 함께 옥중에서 45세의 나이로 순교하게 됩니다. 위 이야기는 수많은 순교 이야기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분들은 신학을 배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교리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요? 누가 그렇게 순교하고 싶은 열망을 넣어주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박해를 받을 때가 당신을 증언할 가장 좋은 기회라 하시면서 아무 걱정 말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아주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 순간이 오면 그리스도께서 손수 우리에게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로드리고 신부처럼 예수님의 뜻을 밟고 살아가기 일쑤인 우리들, 조용히 이렇게 기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예수님, 제 안에 계신 예수님, 당신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저에게 성인들에게 주셨던 힘을 나누어 주시어 오늘 아주 작은 일에서 당신을 드러낼 수 있게 하소서.” ☆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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