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1.25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요한 묵14,14-19 루카21,5-11
"모두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
자연 안에서 농사지으며 살다보니 세월이 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봄이 왔는가 하면 금방 여름에 가을이요 겨울입니다.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마음은 늘 청춘 같아도 계절의 변화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곧 죽음입니다.
과연 내 나이 계절은 어느 지점에 와있을까요?
세월의 흐름을 실감나게, 철나게 하는 것이 계절의 큰 이점입니다.
그러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할 수 있는 자연 안에서의 삶 역시
큰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말씀 묵상 중 퍼뜩 떠오른 영어 구절입니다.
“All time is God's hand"
모든 시간이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니
모든 시간이 거룩하고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새삼 거룩함의 체험이, 영원의 체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매사 시간 체험이
하느님의 거룩함의 체험이자 영원 체험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 누구, 그 무엇도
하느님의 손을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진정 이런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이들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하느님의 손에 있다는 믿음,
얼마나 마음 편안하게 하는 지요.
그대로 생사를 넘어 영원한 생명의 체험입니다.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는 믿음이
환상 없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살게 합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현자의 고백,
바로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는 믿음 있어 가능한 고백입니다.
여기 사는 수도자들,
기도하며 일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고, 또 살 것이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하느님의 손 안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손 안에 살 때 비범한 듯하지만,
참 평범한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을 앞에 둘 때 환상의 안개 걷혀 투명한 현실이듯
하느님의 손 안에 있을 때 역시 환상의 안개 걷혀 투명한 현실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하느님 안에 있을 때 속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불안도 사라집니다.
유혹과 악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의 손 안에 있음을 까맣게 잊어버려
속는 일 비일비재하고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안에 악의 유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성전의 외관에 감탄하는 이들과는 달리
언젠가의 성전 파괴를 내다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처럼 하느님의 손 안에 있을 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내적 눈도 지니게 마련입니다.
묵시록의 요한 역시
하느님의 손 안에 있기에
장차 있을 종말 심판의 현실을 내다보지 않습니까?
새삼 하느님 안에 정주의 삶이 얼마나 고마운지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안에 정주할 때
늘 지금 여기서 안정과 평화의 삶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 안에 깊이 믿음의 뿌리 내리는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묵시2,10ㄹㅁ).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