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종말이 오면 모든 것이 없어지고 결국 남는 것은 하느님나라 뿐일 것이다. 사라질 것은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충실히 살아온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세상 종말이 곧 지구의 종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느님 뜻에 어긋나게 사는 존재는 사탄과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말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들의 종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종말은 반드시 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 뜻에 맞는 새 세상이 건설될 것이다. 그것은 내 생활 속에서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생활을 없애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종말이 언제 오든, 각자에게 세상 종말은 죽음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믿고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신앙에 가장 큰 적이다. 사실 우리는 이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다.
자주 우리는 확신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열심히 기도하면, 열심히 미사에 나가면 반드시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그런 식으로 시험해서는 안된다. 정답인생을 살고 싶어 하지만, 정답 인생은 없는 법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하느님 나라가 온다는 것이지만, 언제 올지 모른다. 또한 그 종말이 언제인지 알려 해서도 안된다. 종말은 하느님께 유보된 것이고, 우리 인간이 결정할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분명히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이 참된 신앙의 표가 된다는 말이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많은 오해와 미움 속에서 살아 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이름” 때문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예수님 때문이라면 지혜롭게 견디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면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에 대항해서 이기는 방법이 있다면 회개와 봉헌밖에 없을 것이다. 내 이름을 빛나게 하려다가 당하는 것이니 회개해야 할 것이고, 부당하게 당하는 고통이라면 하느님께 봉헌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증오와 공격은 똑같은 증오와 공격을 나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번 충고해서도 안될 경우 죄인으로 취급하고 상대하지 않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나의 가족이나 공동체의 한 사람일 경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에 합치시키는 방법이 가장 신앙인 다운 행동일 것이다.
하느님께 신뢰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육신이야 상처를 입고 잃을 수도 있겠지만 영혼은 그만큼 더 예수님을 닮아 거룩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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