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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굴욕을 참고 돌아오기-룻기3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7 조회수853 추천수3 반대(0) 신고

굴욕을 참고 돌아오기-룻기3

<생명의 말씀>
 그리하여 둘은 길을 떠나 마침내 베들레헴에 다다랐다. 두 사람이 베들레헴에 들어 서는 것을 보고 아낙네들은 "이 사람이 나오미 아니야?" 하며 떠들썩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들 말아요. 사따이신께서 나에게 쓰라림을 가득 안겨 주셨다오. 그러니 나를 마라라고나 불러 주어요. 떠날 때는 아쉬운 것 하나 없었건만, 야훼께서는 나를 빈손으로 돌아 오게 하셨다오. 그런데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시오? 야훼께서는 나의 허물을 들추어 내셨다오. 사따이신께서는 이렇듯이 나에게 불행을 안겨 주셨다오." 이렇게 나오미는 모압 시골을 떠나 모압 사람인 며느리 룻을 데리고 돌아 온 것이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를 거둬 들일 무렵이었다.  (룻 1:19-22)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매우 처량하고 비참해보이기까지 합니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그 10년의 과정에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하느님께서 주셔서 지키고 살라고 하신 땅을 경제적 조건 때문에 버리고 모압땅으로 가버린 믿음 없는 행위
② 흉년을 피해 잘 생활하면서 며느리를 얻는 10년 간의 피상적 번영,
③ 남편과 아들 둘이 모두 죽어버리는 징계
④ 회개하고 하느님의 은혜를 바라며 돌아오는 회복

나오미가 돌아오자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봅니다. 결코 금의환향이 아닌, 몰락한 상태에서 고향땅으로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본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또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회개와 회복의 결심을 하고 온 나오미는 달랐습니다. 모든 굴욕을 참아 받고 하느님께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귀향한 것입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고향 아낙들에게 처음 건넨 말이 '기쁨'이란 뜻의 본래 이름대신에 '쓴 맛' 또는 '괴로움'이라는 의미의 '마라'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 깊이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와 실수를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모압땅에서 번영하고 잘 살았는데 그것이 어쩌다 보니 재수 없어서 혹은 불의의 사고로 쫄딱 망했다가 아니라 내가 이 지경이 된 것은 하느님께서 징계하신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늦기는 했지만 나오미는 하느님의 권면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았고 하느님의 징계를 깨달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죄를 범하고 실수를 저질러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나오미는 오히려 더 성숙해졌던 것입니다.

만약 나오미가 하느님의 권면과 징계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냥 모압땅에서 그저 그렇게 사라져 갔을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저 인간적으로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압땅에 머무는 나오미 일가에게 크나큰 시련을 주셨지만 나오미가 겪은 시련은 나오미의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당신을 떠난 믿음 없는 영혼들이 다시금 당신 계획 안으로 돌아오도록 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땅에서 겪은 시련은 참으로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물론 두 아들까지도 모두 잃고 말았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시련과 고통은 '내게로 돌아오라.'하시는 하느님의 권고입니다. 하느님은 영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처음에는 우리 인간들에게 당신의 영적인 말씀으로 권고하십니다. 나오미에게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말씀을 들을 정도로 깨어 있지 않거나 또 애써 그 영적인 말씀을 무시하며 세상적인 안목으로만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이해의 수준 즉, 눈높이를 맞추셔서 육적인 수준으로 권고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미에게 그런 수준으로밖에 권고하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매사에 기도를 통해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께 지혜와 의견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오미는 그런 육적인 수준의 경고를 여러 차례를 연거푸 받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의 깊은 뜻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또 돌아 와서는 그런 자기의 처지를 그대로 인정합니다.

"떠날 때는 아쉬운 것 하나 없었지만 나를 빈손으로 오게 하셨다오."

최소한 고향을 떠날 때는 가족이라도 멀쩡하게 있었다는 걸 안 것입니다. 또 찢어지게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떠났다기보다는 더 나은 경제적 조건을 위해서 하느님을 버리고 떠났던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깊은 회개와 결심을 가지고 돌아온 나오미를 위해 모든  준비를 다 해 놓고 기다리셨습니다.

신약 성서에서 돌아온 탕자를 반겨 맞아준 아버지처럼 하느님은 나오미와 룻을 향한 계획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룻기의 저자는 나오미의 돌아온 사실로 1장을 마감하지 않고 22절에 그들이 돌아올 때가 바로 보리추수기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마음을 돌이키고 돌아온 자를 맞을 준비를 미리 다 해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수준의 권고를 받아들일 줄 알아서 믿음의 도정에서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지만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권고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지 않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영적인 권고는 거의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영적 공동체의 권고 등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 옵니다. 영적인 권고에 민감하기 위해서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묵상해야만 하고, 공동체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안테나를 손질하고 닦아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10년 넘게 청년 공동체를 섬기면서 많은 청년들을 만나게 되는데 나오미 가족의 모압에서의 10년 삶처럼 피상적 번영을 위해서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잠시 그 삶이 잘 되는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여 주셨던 것들까지 다 잃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그 후 나오미처럼 깊은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자기 욕심 때문에 혹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것까지도 잃었거나 쓰디쓴 실패를 맛본 사람이라면 묵상을 통해서 나오미의 마음 안에 들어가 봐야 합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함께 돌아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회개와 돌아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열어 가실 수 있는 당신의 새로운 역사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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