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작은 자가 천상의 것을 누립니다 - 김연준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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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8-11-27 | 조회수85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작은 자가 천상의 것을 누립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것을!
더구나 재산(돈)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돈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세속적인 욕망 즉 음행과 더러운 행위와 못된 욕심은 결국 인간을 패가망신으로 이끈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그 욕망을 끊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알면서도 그것을 포기 못하고 일말의 끈을 놓지 않는가?
그 망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고, 항상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항상 오늘 밤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루가12,20)
회개는 항상 지금이어야지 다음으로 미루게 되면 악은 그것을 이용해서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우리를 죄로 이끄는 유혹자는 늘 그럴듯한 선(그렇게 보이는)을 가지고 접근하기에 쉽게 함정에 빠집니다.
유혹자가 죄로 이끄는 추락의 통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곧 육체의 쾌락,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1요한2,16)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고 크거나 적게 우리는 이것들에 메여 있습니다. 새가 굵은 밧줄에 묶여 있든 가는 실에 묶여 있든 날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결심은 자주 하지만 쉽게 무너지고 실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쾌락을 거슬러야 되고 눈의 쾌락을 거슬러야 되고 돈에 대한 우상에서 ‘적당히’가 아니라 온전히 벗어나야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셋 중에서 인간을 가장 효과적이고 은밀하게 그래서 결국은 가장 치명적인 상태로 이끄는 것은 바로 눈의 쾌락을 좇는 것입니다. 주로 눈의 쾌락을 통해서 육체의 쾌락에 대한 원의가 커지고 재산에 대한 욕도 부풀려지게 됩니다.
눈의 정결은 몸과 마음의 정결로 이어지고 눈의 불결은 몸과 마음의 불결로 연결됩니다. 눈이 분수를 지켜야 욕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자외선이 강하면 썬 글라스를 써야 눈이 편안합니다.
유혹이 강하면 우리도 우리의 눈에 무엇인가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가리는 것 바로 성모님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단순함과 순결은 병든 세상의 가장 강력한 치료제입니다.
성모님은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었기에 고통이 가득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고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포기와 절제가 없는 신앙생활은 가짜입니다.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지 않으면서 주님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세상은 골리앗이고 우리는 다윗입니다. 객관적 전력으로 보면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이가 승리하는 것은 성서 전체의 가르침입니다. 겸손한 자, 작은 이 임을 인정하는 자만이 세상을 거슬러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믿지 않은 용기 있는 자를 찾아 나서시고 그 사람에게 은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나의 약함을 아는 것이 곧 강함의 비결입니다. 그것은 분별과 의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잘못에 빠지는 데에는 처음부터 큰 잘못으로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항상 별 것 아닌 것으로 시작해서 심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소홀이 여기는 것은 결국 큰 것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세상의 것들은 화려합니다. 그러므로 유혹은 강합니다. 재미와 안락이 넘쳐나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아씨시 프란치스코 성인은 늘 강조하였습니다. “쾌락은 순간이고 고통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습니다. 실망하지 말고 더욱 작아지는 것에 집중하며 어머니 품안에 머물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성모님의 주요한 발현(파티마, 루르드, 아끼다 등등)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적당히”입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천상 것을 추구하든가 지상 것을 추구하든가 해야 합니다. "미지근한 것은 뱉어버린다"(요한묵시록3,16)고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 하십시오” 라고 사도바오로는 강조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천상 것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천상 것을 온전히 추구하기 위해서는 천상의 엄마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하고 함께 있는 아이는 반드시 집안(영원한 생명-천국)에 들어갑니다.
인생은 헛되고 헛됩니다.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됩니다.
▣ 김연준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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