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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8 조회수671 추천수5 반대(0) 신고
 

삶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왜 엄청난 돈을 들여서 자녀들에게 공부를

시키느냐?”고 물으면 부모들은 열이면 열, 모두

“다 자식들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학교도 못가고, 밥벌이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 . . . 소위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위 일류대학이라는 곳을 나와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고

자기완성을 이루지 못한다면 공부는 오히려 이 사회에

독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한 중년 남성이

미국에 왔다. 간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그 남성을 알게 된 나는 그가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곧 예비신자 교리를 시작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또 인생이 어떻게 시작되고

종말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이제 인생이라는 것이 언젠가 한번은

가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마음을 하느님께 열어 놓자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벌어놓았던 재산이 모두 다 없어져도 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알았고 하느님께서

거둬 가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돈이 있어도 없어도 하느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함께 예비신자 교리를 받은 친척들도 가진

재산을 모두 나눠 보태겠다고 했다.


결국 이 남성은 수술을 받고, 완치될 수 있었다.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자, 이 사람은 몸만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삶이 새로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 의미에 대해 알아야한다. 정신은 일시적

의미밖에 모른다. 정신은 그만큼 얕은 수준이다. 하느님의

궁극적 뜻 앞에서 정신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는

정신에만 의지해 살아간다.


진정한 정신의 역할은 신체를 생생하게 만들어 나아가도록

기능하는 것이다. 또 영과 연결되어 인간이 무한히 초월하도록,

궁극적 목적을 깨닫도록 기능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정신의 현주소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인터넷을 보자. 인터넷 안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고,

철저히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과연 있는가.

온갖 자기 자랑과 기만과 교만이 넘친다.


정신의 가장 우선적 역할은 육신을 살아있는 생생한 육신으로,

거룩한 육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궁극적 의미와 계속해 연결해 나가는 것이 정신의 역할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정신으로 몸도 거룩하게 못

만들고, 영과의 관계도 못 맺는 반 형성적인 삶, 오직 경쟁주의

사회 안에서 자기의 이권과 자기중심적인 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정신적인 기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정신을 물질적인, 세상 살아가는 전문적 기능만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마치 육신이 암으로

죽어가듯, 정신은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정 영 식 신부 지음

                                  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오늘의 묵상:

우리 속담에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온통 훌륭한 대학을 나와야만 세상을 잘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신비하게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이에게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적합한 재능을 한가지씩은 다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가면서 욕심을 부리다 보면

세상이 공평치 못하다는 말로 투덜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북에서 우리와 같은 형제, 자매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그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의 진면목을 좀 더 자세히 알기만 한다면

기쁨과 즐거움을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삶은 이웃과 함께 누리되 이웃은 어디 까지나 이웃으로

그쳐야 됩니다. 혹시라도 이웃과 내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불평과 불만이 쌓이는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신체의 각 부분이 조화를 이루면서 각기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도록 한다면 건전한 신체의 발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불평과 불만을 빼버리고 서로 도우면서 화합을 이루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어

비록 보잘 것 없는 ‘몽땅 연필’일망정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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