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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든 집을 영영 떠날 수 있는가?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8 조회수523 추천수1 반대(0) 신고
몇 년 전에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성작가 중의 한 사람이며
베두인(Bedouin) 족의 수사(修士)인 까를로 까레또(Carlo Carretto)가
여러 해를 사하라 사막에서 지낸 후 이태리로 돌아 왔다.
돌아온 후 영성적인 고백서 『I Sought and I Found; DLT, 1984』를 썼는데
그의 여행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하느님과의 싸움도 기술하고 있다.
그는 교회에 보내는 연애편지로 책을 끝내고 있다. 서두는 다음과 같다.
 
나는 당신, 나의 교회를 얼마나 비난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나를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도 당신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피괴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당신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많은 스캔달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이 성스러움을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태까지
더 개화를 반대하고, 더 타협을 많이 하고, 더 엉터리인 것을 보지못했지만,
더 순수하고, 더 관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면전에서 내 영혼의 문이 쾅하고 닫히는 것 같은 느낌을 수 없이 받았지만
매일 밤, 나는 당신 품 안에서 죽고 싶다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완전히 당신은 아니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하나이므로 나는 당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내가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다른 교회를 지으려 한다고요?
그러나 같은 결점 없다면 다른 교회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 결점이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다른 교회를 짓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나의 교회일 것입니다.
아니, 나는 더 좋은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말하지 않고, 결점도 있지만
그래도 신성한 교회를 얼마나 멋지게 표현했는가?
나는 판에 박힌 듯 천편일률적인 교회에 대하여 불만을 말하고 싶을 때면
이 글을 많이 이용한다.
인간의 연약함과 편협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점을 갖게 되고,
타협을 하고, 권력에 의해 부패된 판박이 교회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겠는가?
복음 강론 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교회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어두운 시절에 그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또 계속하여 상처를 입히고 있는 교회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겠는가?
교회는 진실성을 어떻게 주장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모두 우리들이 자주 듣는 불만들이며,
아울러 “나는 하느님은 믿을 수 있지만 교회는 못 믿겠어.”하는 소리를 가끔 듣기도 한다.
이러한 불만들은 아주 타당할뿐더러 진지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불만이 말하는 것들은 사실이다.
교회의 역사와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교회는 항상 어두운 측면을 갖고 있었고 아직도 갖고 있다.
그리하여 순수하게 하느님을 생각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첨언할 것이 있다.
교회는 인간성 같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현실적인 사람들에게만 존재한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역사적인, 실제적인 교회를 생각하는 수가 많다.
즉 실제로 이름을 가진 현실적인 사람들이
교회의 실제 문제와 결점들을 먼저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는 참된 모습의 교회가 아니고 어둡고 괴이한 교회인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한 가족이며 실제로 존재하며 전통을 갖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항상 마음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한 가족이 되면 가족 고유의 모반(母斑)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싫어할 수 있고, 그것에 화를 낼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오래 동안 가족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가족의 결점에 분노할 수도 있고, 그 때문에 슬퍼할 수도 있고,
가족을 더 사랑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섣불리 판단하여
죄의식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하지만,
가족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이며 반드시 화해하고 죽고 싶은 존재이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인 것은
가족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설령 가족을 떠나서 죽더라도 아무도 진정으로 가족을 버리지는 못한다.
 
교회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하느님이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하느님 아버지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비록 교회가 판박이이기는 하지만 교회를 하느님으로 알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부모들처럼 엄연히 존재하며 기이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들이 가족에 대해서 한 것처럼, 교회를 싫어하고, 교회의 결점에 분노하고,
교회의 불완전함에 괴로워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 필요하다.
함께 싸울 수도 있고, 오래 동안 떨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다),
피부에 반점을 갖고 있는 것 같이,
어디까지나 우리의 것으로, 역사적인 그리스도를 만나는
실제적이고 유일한 장소인 교회가 우리의 가족인 것이다.
우리가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그것은 어쩌면 슬픈 현실이다.
 
까레또(Carretto)의 말처럼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영혼의 문을 쾅 하고 닫고 싶을 때가 많더라도
매일 교회의 품에 안겨 죽는 기도를 해야 한다.
까레또와 같이 우리가 교회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글을 편집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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