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가 21,28)
복음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멸망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입니다.
하나가 파멸이라면 다른 하나는 구원입니다.
이 두 상반된 세계는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 동시에 주어지는 세계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행복한 사람”(요한 묵시록 19,9)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반된 모습은 우리의 내면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가장 혼란한 시기, 바로 멸망할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은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는 고뇌의 시기는
암흑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내입니다.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왜 그런지도 모르면서
시련을 견디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의 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느님의 부재 체험은 지성을 뛰어 넘어
믿음의 세계에서만 인식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안다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무지의 구름의 저자는 무지의 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지를 건너 무지로 가는 세상을 아는 것은
역설적이며 신비적입니다.
어쨌거나 이 영역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너무 작은 소리도 그리고 너무 큰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도 그리고 너무 느린 속도도 못 느낍니다.
설령 왜 우리의 삶 안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 수 없을 지라도,
하느님께서 때가 되면 환히 보여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려야 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고뇌의 시기가
바로 하느님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루가 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