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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29일 야곱의 우물 -루카 21, 34-36 묵상/ 다시 용기를 내고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9 조회수638 추천수6 반대(0) 신고
다시 용기를 내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4-­36)
 
 
 
 
◆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종신부제 양성과정 5년을 함께했던 동기들끼리 공원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지난 6월의 부제품 이후 처음 모인 자리에서 서로 반갑게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제 각자 본당에서 소임을 맡아 고유한 탈렌트와 은사를 살려 봉사하고 사목하는 모습에서 흐뭇함을 느꼈다. 지난 5년 동안 여정에서 고락을 함께 한 든든한 동지였다. 특히 남다른 어려움을 헤쳐 나온 제시 부제와 부인 엘로이스를 보며 시련의 은총을 묵묵히 받아 안은 그들 부부한테서 경외심을 느낀다.
 
2년 전 사순절 기간 주말에 가톨릭 교육대회(컨벤션)에 참석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마지막 날 대회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전시대를 둘러보던 두 사람과 마주쳤다. 근육을 다쳐 팔에 깁스를 하고 있던 제시에게 안부를 묻고는 다음 주말 모임(class) 때 보자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밤늦은 시간에 다른 동기한테 전화를 받았다. 제시와 엘로이스 부부의 외아들 척이 모터사이클을 타다 교통사고를 당해 방금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몇 시간 전 두 사람과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왔는데, 그새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소방국 캡틴 제시의 아들 척은 대를 이어 소방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며칠 후 장례미사에 갔을 때 성당은 소방관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주차장과 바깥 도로에도 소방차들이 즐비했다. 수업시간에 이쑤시개를 늘 입에 물고 농담을 툭툭 던지던 사람 좋은 제시는 그 다부진 체격에 캡틴 정복을 차려입은 멋진 모습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문을 받으면서 표정도 말도 잃은 듯했다.
 
엘로이스 역시 멍한 채 치미는 분노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듯 보였다. 부제양성과정을 포기하지 않을까 동기들이 모두 걱정하며 부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도와주기로 의논했다. 하지만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두 사람 스스로 치유되고 소명을 다지는 과정은 다른 동기생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었다. 서품식이 있기 직전 제시는 모임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하느님이 갑자기 데려가신 뜻을 금방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남은 우리에게 무언가 새로운 몫을 남겨주신 건 분명하다고 깨닫는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갑자기 닥치는 운명의 시간이 오면 우리는 아무리 깨어 있어도, 아무리 기도로 무장했어도 빈손으로 알몸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경험한다. 안전을 보장해 주리라 믿었던 삶의 질서체계와 합리적인 해결책이 사라지고 혼돈 속에 빠지는 느낌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럴 때 위로가 되는 것은 주님이 이런 일을 미리 알고 계셨고 어려움을 덜어주기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깨어 기도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듣고 다시금 용기를 내야 한다. 언제고 닥칠 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영배(미국 로스앤젤레스 대교구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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