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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도 눈물짓고 계실 예수님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9 조회수619 추천수7 반대(0) 신고
 
 

지금도 눈물짓고 계실 예수님 - 윤경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4-36)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당시 유다는 묵시문학이 한창 꽃피는 전성기였습니다. 그래서 일반 민중도 묵시문학에서 표현하는 어투와 방법에 익숙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정도보다 훨씬 깊숙이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하는 점이 바로 이점입니다. 지금도 학생들이 저자직강을 굳이 들으려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현장성이 주는 이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제쳐 두기보다는 그 당시로 돌아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아마도 종말에 대한 예수님 말씀은 그 주된 목적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당신 생애를 예상하시고 이 땅에 남을 제자와 백성에게 하느님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떠나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완벽하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이렇게 표현 되었을 것입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다보면 종말과 심판이 오로지 경고 말씀이라기보다는 걱정하시는 모습이 더 배어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지옥에 떨어져 신음하고 있다면 과연 주님께서 어떤 마음을 하실까요. 아마도 지옥에 내려가서까지 그를 구하시려고 애쓰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음에도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계시려하실까요? 바로 그들을 구원하시러 이 세상에 오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종말을 언급하신 까닭은 구원이 누구 하나의 예외도 없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주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은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지옥을 선택하게 하셨느냐는 물음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덫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죄짓지 못하게 창조했으면 되지 않았느냐는 식입니다. 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꽤 식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정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인내와 용서와 사랑을 가리켜 보여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겉모습을 똑같이 창조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특성을 인간에게도 부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당신의 창조성과 자유를 우리에게도 주셨으며 그 결과 인간이 하느님을 거부할 수 있는 위험마저 감내하실 각오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일이 제대로 잡힐 것임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이 점을 깨달아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로마서 8,28에서 밝혔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 확신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말과 심판을 말씀하신 이유는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의 위험성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신뢰의 한 표를 던지신 것입니다. 결국에는 주님 앞에 모두 하나 되어 품안으로 들어 올 것이라 믿으신 것입니다. 그 시기는 분명 우리 각자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삶이라 여기는 시간보다는 더 늦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눈에는 천 년도 하루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 오래지는 않을 것입니다.

 행여 심판과 지옥을 하느님의 복수라고 손톱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 될 것입니다. 죄 지은 자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해도 그것은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과 용서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남용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 한 사람이 회개를 더디 하면 그만큼 인류 구원의 시기가 늦어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메어지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에게도 마음을 상하게 하면 가슴이 메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하느님께야 더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종말과 심판이 없다고 한다면 이 또한 큰 착각입니다. 개개인에게 심판과 종말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요한 12,47-48)

 인간이 스스로 구원하러 오셨다는 주님 말씀을 내친 것이 바로 심판이며, 인간 스스로 구원에서 멀어진 상태로 머무는 것이 지옥이라는 말씀으로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또 예수님을 충실히 따라 사셨던 모든 성인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이 말씀을 잘 알아들으라고 매달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귀를 열고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어 기도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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