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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64) 은총대학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2 조회수527 추천수4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12 오후 5:27:54

 

 

     (64) 은총대학

                     이순의

             

 
이 름 김성용
세례명 프란치스꼬
축 일 07-14
출신본당 북동
서 품 일 1963-12-20

 

 

 ㅡ미사ㅡ

또 여러 날 만에 돌아온 짝꿍이 표시를 한다.

주머니에서 두 번 접힌 사각의 주보를 꺼내서 지난 주일미사에 참례한 증거물을 제시하고 있다.

시골성당의 주보다.

 

글씨보다 글씨를 담고 있는 네모 칸의 테두리가 더 짙어 보이는 지면에는 공지사항들이 빼곡하다.

종종 가져다주는 시골성당의 주보를 받아보며 지방교구의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보를 펼쳐 보기도 전에 짝꿍의 입이 계속 떠벌이고 있다.

 

"왔다 고 양반 고약허시데.

박수도 못치게허데.

꽃다발 받는 것도 세속생활이라고 허데.

12살 때 한쪽 눈을 잃었다고 허데.

41년간 사제생활 했다고 허데.

죽으러 가는 게 아니고 잠시 쉬러 간다고 허데.

아직도 봉투 주는 신자도 있다고 허데.

당신 손을 잡아 볼라고 허는 신자도 많다고 허데.

앞으로도 잘 살을 거라고 허시데.

당신 걱정은 말고 시골 신자들이나 잘 살으시라고 허데.

눈에 시력이 40프로 밖에 안 남았다고 허데.

언제든지 보고 싶으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허데.

악수도 안하고 가실란다고 허데.

교우들이 너무 서운허다고 허데.

평일미사보다 더 조용허데.

손님 신부님도 손님 수녀님도 못 오시게 헌것 같데."

 

허데. 허데. 허데. 허데.로 계속 지저귀는 짝꿍은 시골본당 주임신부님의 은퇴미사에 참례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니 두서도 없이 좀 할 말이 많았겠는가?

묻는 말에는 모른다고 한 가지도 답변을 못하면서 자기가 듣고 본 얘기로만 허데로 시작해서 허데로 끝을 냈다.

 

바보 같은 짝꿍이다.

어떻게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 영광된 미사를 다녀왔으면서 묻는 궁금증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모르냐?

진짜 멍텅구리 같은 염병헐 놈의 짝꿍이다.

 

80년 광주 민주항생의 고통스런 시점에서 그 신부님은 민주의 광장 도청과 피비린내 나는 대학병원의 중간지점에 있는 유서 깊은 성당의 주임신부님이셨다.

당시 아버지의 입원으로 그 성당은 나의 주된 기도 자리였다.

당시에는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부님의 이름세자를 더 많이 들어야 했던 역사의 중심에 세워지신 분이다.

 

노인이 백발에 허연 수염을 달고 계시는 것은 낯설지 않다.

젊은 아저씨가 시꺼먼 머리 결에 시꺼먼 수염을 숱도 많은데 칙칙하게 길고 있으면 여간 시야가 불편하다.

신부님은 그런 모습으로 6개월은 소세도 안하신 것 같은 꾸적지근한 모양새를 하고 다니셨다.

 

가끔 짝꿍이 다녀오는 시골본당에 계시는 그 분을 교구청 창에서 찾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시커먼스 신부님은 사라진 과거완료고 너무나 고운 백색의 머리 결만이 출렁거리고 있을 뿐, 수염조차도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지금의 사진 한 장은 6분 간격으로 소세를 하실 것 같은 말쑥함 그 자체였다.

 

벌써 역사는 흘러 인생의 무상함으로 유유히 사라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짝꿍과 내가 암울한 시대에 우뚝 서셨던 그 시절 그분들의 나이에 다가서 있다.

확실한 세대교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짊어진 시대에 우리는 세상을 향해 그분들처럼 외처야 할 절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걸어가며 행동하는가?

자식의 30원짜리 문자메시지의 폭주로 대리점을 찾아가 고작 몇 마디 소리 지르고 마는 인생 아닌가?

 

"너희가 어린학생들을 타락시키고 받은 돈으로 차떼기 정치자금 줬어. 이 새끼들아."

TV에서는 돈! 돈! 돈! 이라는 청문회와 돈 때문이라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간도 안 떨리는 태연한 세대가 아닌가?!

어쩌면 처먹은 놈들을 욕하는 나에게 처먹을 기회가 역류해서 온다면 숨도 안 쉬고 꿀꺽 삼키고야 말 돈의 노예세대가 아닐까?

 

그랬다.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시민들과 시민군은 사제들의 정의로움에 신뢰하고 섬김을 드렸었다.

집에서 주먹밥을 해서 가지고 나가 누구하고나 나누어 먹었고, 떨어진 장갑 한 짝이라도, 심지어 피우다 남은 담배꽁초 반 토막이라도 들고 나가 나눌 수 있었다.

 

주님의 이름에 목숨을 걸고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함께 갔던 목자들!

그분들의 세대가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있다.

그렇게 조용히!

 

<신부님 경하 드리옵니다. 부디 건강, 또 건강 유념하세요.>

 

짝꿍은 하데 라는 인용구에서 벗어난 한 문장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마무리했다.

"신부님이 사제가 아니었다면, 그 학력에! 그 인품에! 그 권위에! 그 연세면! 모자람이 한 가지도 없는데, 좀 많은 것을 축적했을 것인가?! 잉?!"

짝꿍은 신부님의 은퇴미사에서 성사의 은총을 충분히 감동하고 온 것 같다.

 

짝꿍이 나에게 장가를 들겠다는 미끼로 내가 내세운 조건은 “혼인의 일생동안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맹세였다.

그 약속은 진심으로 잘 지켜져 이번 지방 나들이에서도 그냥 단순한 미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의 학벌을 갖추지 못한 그에게 전국을 떠도는 미사참례는 대학공부보다 더 가치로 운 것이다.

은총대학의 영성학과 미사수업!!!!

 

다음에도 짝꿍은 은총대학에서 가져 온 학습지인 주보를 사각으로 접어 속  주머니에 담고 다니다가 그 약속을 오늘도 지키며 살고 있노라고 각시인 나에게 어김없이 가져다주리라!

 

 

신부님 약력
사제서품 1963. 12. 20. (서울 명동/ 노기남 대주교)

나 주 보좌 1964. 1. 6. - 1964. 9. 23.
일 로 보좌 1964. 9. 24. - 1965. 3. 31.
해 남 보좌 1965. 4. 1. - 1965. 7.
경 동 보좌 1965. 8. - 1965. 8.
남 동 보좌 1965. 9. 12. - 1967. 6. 14.
진 도 보좌 1967. 6. 15. - 1968. 1. 2.
담 양 주임 1968. 1. 3 - 1972. 9.
월산동 주임 1972. 2. 21 -1976. 6. 21
관리국장 1976. 6. 22 -1977. 7.
남 동 주임 1977. 7. 28 - 1983. 2. 6.
화 순 주임 1983. 2. 7 - 1987. 2. 9.
산정동 주임 1987. 2. 9 - 1991. 2. 6.
계림동 주임 1991. 2. 7 - 1996. 1. 29.
완 도 주임 1996. 1. 30 - 2001. 2. 13
무 안 주임 2001. 2. 14 - 2004. 2. 12

원로사목자 200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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