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신앙인의 모범이셨다 - 윤경재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26-38)

 제가 남성교우들과 루카복음 봉사를 할 때 매번 질문 받는 내용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소식을 들었지만 한 분은 벙어리가 되리라는 책망을 받았고, 성모님은 처음부터 은총이 가득하다는 찬미를 받으셨는데 그 차이가 무엇 때문이냐는 것입니다. 또 두 분이 천사에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그 반향이 다른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시 남성분들이 가진 분석적 성향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본문을 잘 읽어 보면 즈카르야가 아들이 없어서 낳게 해달라고 오랫동안 청원을 하였고 그 청원을 받아주시고자 천사가 소식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라고 말하며 천사에게 자기가 이해할 수 있게 증거를 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의심되는 이유를 댑니다. 

 즈카르야는 그 일을 간절히 소원했었지만 속마음은 언제나 의심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하면서 자주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과연 들어주실까? 하는 의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나 어린 소녀인 마리아에게는 한번도 원한 적도 없고 꿈도 꾸지 못할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마리아는 은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마리아는 속 깊은 성정대로 천사의 인사말에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태산이라고 처녀인 자기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은 놀람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사리를 따져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인간의 내면을 읽을 줄 아는 천사는 곧바로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설명해줍니다. 

 순수하고 어린 마리아이지만, 이 일이 가져올 파장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이해도 높았고 매사를 골똘히 생각하는 성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의주도한 루카저자는 복음서 곳곳에 이런 마리아의 모습을 알 수 있도록 암호문처럼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마리아가 곧 바로 응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호한 각오가 배어나오게 그린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순종의 한 말씀 덕분에 전 인류는 구세주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오셨습니다.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세를 지닌 한 여성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교회는 이런 마리아를 우리 신앙인의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색다른 관점에서 성모 마리아를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을 그분이라는 삼인칭에서 당신이라는 이인칭으로 받아들인 신앙인들에게 마리아의 모습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내 안에 잉태하게 해주신 첫 사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도 마리아를 본받아 각자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하나 됨을 마리아의 모습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이 태도야말로 인간이신 마리아께 드릴 가장 큰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