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수요일
Come to me, all you who labor and are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Mt.11.28)
제1독서 이사야 40,25-31
복음 마태오 11,28-30
몇 년 전에 이탈리아 로마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문화유산들을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실제로 이 로마 사람들은 조상님들이 만들어 놓은 유적 때문에 관광수입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긴 세계에서 잘 사는 민족을 보면 조상님 덕택에 잘 사는 민족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조상님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 덕분에 잘 살고 있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눈에 보이는 유산을 받은 민족만 잘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유산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있지요.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넓은 땅도 없고, 풍부한 자원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대한 사상가나 학자 등 뛰어난 인물들이 유대인 중에서 많다고 하지요. 그래서 세계의 정치, 문화, 경제, 사상, 종교 등이 유대인들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받은 유산은 무엇입니까? 바로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들의 행복을 위해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엄청나게 많은 부동산과 번창하는 사업, 아니면 수백억 원의 현금?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물려주었다고 자녀들이 정말로 행복해질까요? 행복할 것 같지만 우리들은 세계의 역사 안에서 볼 때, 진정으로 물려주어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가치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주시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즉,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에게 주시는 안식은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채워줌으로 인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온전히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안식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이 주님의 사랑이 담긴 신앙의 유산을 받아 우리의 신앙을 더욱 더 굳세게 키워야 합니다.
옛날 어느 집에 같이 살고 있는 개와 닭이 싸움이 했습니다. 잔뜩 화가 난 개가 닭에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인이 너를 왜 기르는지 아느냐? 새벽을 알리라고 기르는데 늦잠만 자고 있으니 삼계탕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닭도 몹시 기분이 언짢아서 한마디 쏘아 붙였습니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 지금은 모든 사람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데 시간을 알리는 일은 소음 공해야. 제발 아는 체하지 말고 너를 왜 기르는지 생각해 봐. 도둑을 쫓으라고 비싼 개밥 사다 먹이면서 기르는데 짖지 않으니 너야말로 금년 여름에 보신탕이 되고 말겠다.”
개가 하는 말입니다. “모르면 제발 가만히 있어라. 우리 주인이 도둑이야. 주인의 친구들을 보고 짖으면 정말 보신탕 되고 만다.”
개와 닭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그럴듯한 구실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혹시 변명하기에만 바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주님께서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을 받지 못하고 더욱 더 힘들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과거의 행위에 대한 후회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함이 옳다.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야말로 우리를 비탄과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한다.(R.부라우닝)
현재의 능력으로(‘좋은생각’ 중에서)
존 파피는 세계적인 성공학 강사다. 그는 두 팔이 없이 태어나 온몸으로 깊은 고통을 극복하고 일어섰다. 그런 까닭에 존 파피의 강연은 자신이 노력하기에 따라 상황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존이 열 살 때였다. 그는 동생이 옷을 입혀 주지 않으면 학교조차 갈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을 가족에게 의존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가족회의를 열고 형제들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 너희는 더 이상 존을 도와주면 안 된다.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다 접시가 깨져도, 옷을 못 입어 학교에 가지 못하더라도 도와주지 말아라. 존은 이제 너희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거야.”
이튿날 아침 존은 오전 내내 바지 단추를 잠그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탈진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부모로서 너무도 모진 결정을 내린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지금 아들을 도와주면 그 어떤 발전도 없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존은 변했다. 형제들의 도움에서 독립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인공팔을 떼버리고 발가락으로 머리를 빗고 캔을 땄다. 잔디를 깎을 수는 없지만 잔디 깎는 트랙터를 모는 방법을 배웠다. 시계를 찰 손목이 없어도 발목에 차면 되었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최고가 아니라면 현재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 하십시오. 저에게 불가능이 없는 이유입니다. 어린 시절에 무조건 남들의 도움에 의존했던 저는 홀로 서기를 결정한 이후 뭐든지 혼자 다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시장을 볼 때 조카 에밀리를 데리고 가서 도움을 받습니다.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요청하게 된 것이죠. 그것은 의존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노력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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