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멍에를 멘 너를 짊어지겠다.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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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8-12-10 | 조회수74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내 멍에를 멘 너를 짊어지겠다. - 윤경재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멍에는 소등에 얹어서 소가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게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는 농기구입니다. 그 멍에는 모세 율법을 상징하는 용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금령 365가지와 명령 248가지 도합 613가지나 되는 율법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이란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미를 잃고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변해 막상 지키기 어려운 백성들에겐 멍에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죄의식만 심어주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변한 모세 율법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재해석 하시고 단 하나만의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12) 이 황금률을 지키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되므로 마음의 안식뿐만이 아니라 전인적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실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멍에의 무게가 아닙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과 차별받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13가지나 되는 율법이 과중하고 때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면서도 함부로 이의를 달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율법은 더욱 많아지고 모호해져 본래 정신이 퇴색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권력이나 세력을 지닌 부류가 율법을 멋대로 재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이 하나의 명령도 혹시 부담으로 여길 수 있다고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황금률마저도 겸손 되게 멍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너희가 혹시 이것도 멍에이니까 어렵고 무겁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내 말을 믿고 메어보아라. 그러면 의외로 가볍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내 멍에를 멘 너를 내가 다시 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 “행복은 바이러스,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미국 하바드 대학과 샌디에고 대학이 공동 연구한 결과입니다. 사람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행복한 느낌을 지니면 행복지수가 34%나 증가하며 그 확률은 실제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또 친구, 배우자, 이웃 및 친척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수록 ‘전이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수도관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한 쪽이 행복하면 덩달아 행복해지고, 불행하다고 느끼면 상대방도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랭이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까지 말했답니다. 또 마더 테레사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더 테레사라는 이름이나 생각만 떠올려도 평안해지고 행복하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심리학자들은 감정이입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마더 테레사를 만난다면 틀림없이 위로와 평화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미력하나마 마더 테레사를 본받고 싶다고 느낀다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는 것도 바로 이런 위로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전부를 짊어지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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