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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독의 값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11 조회수552 추천수1 반대(0) 신고

노아의 세 아들 중, 맏아들 함은,

포도주에 취하여 발가벗고 잠든 아버지의 허물을 형제들에게 드러내었습니다.

형의 말을 들은 다른 두 아들 야벳과 셈은,

옷을 어깨에 메어 뒷걸음질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수치를 가리워 드렸습니다.

술에서 깨어 이를 알게 된 노아는,

맏아들 함에게,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야벳에게,

창대함의 축복을,

셈에게,

야훼 하느님을 찬송할 축복을 하였고,

아브라함과 유다, 다윗, 그리스도에 이르는 가문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천 여년을 기다려오던 메시아-

병든 자, 소외된 자, 죄인들을 위한 하느님 나라, 천국 복음의 선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위에 맞지 않았습니다.

침 뱉고, 뺨을 때리고, 채찍으로 때리며, 홍포를 입히고, 갈대를 쥐어드리며, 엎드려 임금의 예를 취하여,

유다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그리스도거든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 며 온갖 조롱과 모독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사형에 해당할 만한 죄를 찾지 못하였다. 때려서 놓아 주겠노라 는 빌라도의 판결에,

유다인들은 굴복하지 않고, 그 죄를 자신과 자신들의 후손에게 돌리겠다고 호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천년 동안, 이산의 고통을 감내하며,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모독으로 대신하였던 값을 톡톡히 치루어야 했습니다.

 

왜 이처럼 완고하여 의인을 모독하여야 했을까요?

, 자신들의 기대와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하여도, 혀를 금하며 죄악에 들지 않도록 함이 지혜가 아닐까요?

이는 사악한 악마의 노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지혜는 겸손과 온유한 마음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과, 정의에 자신을 순복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멀고 먼 장래까지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동생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인질이 될 것을 자청하였습니다.

아끼는 아들 베냐민으로 인하여, 백발의 아버지 야곱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돌아가실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감복한 요셉은,

자신을 배신하여 이국 땅에 팔아 넘겼던 형들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형들의 잘못을 과감히 용서하였습니다.

유다의 덕행을 마음에 두었던 야곱은, 죽음을 앞둔 축복의 기도에서,

유다는 형제의 찬송이 되고, 형제들이 절을 하며, 왕권의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가문이 될 것을 축복하였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까지 치솟는 부르짖음과 죄악의 실상을 보시려, 천사들을 소돔과 고모라 성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은 멸망이 경각에 달한 줄도 모르고, 천사들을 해하려, 말리는 롯을 밀치며 막무가내, 달려들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니느웨성의 사람들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성이 무너지리라 는 요나의 선언을 듣고,

임금과 대신, 온 백성, 심지어는 짐승에 까지 베옷을 입히고, 재에 앉아 금식을 하며, 하느님의 뜻을 돌이키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은 모독이 되며, 하느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은 영광을 돌리는 기본이 됩니다.

그것은 주인되신 섬김을 받으실 하느님과, 섬겨야 할 피조물 된 인간의 위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어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함이 피조물들의 본분입니다.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안하무인의 자기 중심적인 삶, 하느님의 뜻을 거스림은 창조주를 모독함과 반역이 됩니다.

 

무참하게 만들고, 흠집을 내어주려는 모독은,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매장하여 생명을 끊으려는 살해적인 것입니다.

남의 무덤을 파다가, 자신이 그 무덤에 매장당합니다.

먼저 남을 세워야 그 기초 위에 자신이 설 수가 있습니다.

허물기를 일삼는 것은 자신의 기초를 허무는 지옥의 행위입니다.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고, 끝에 선 자가 첫째가 되도록 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법칙입니다.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 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자신을 인정하여 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하느님도 칭찬에 약하십니다.

이는 명예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와 의미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혀와 입을 잘 다스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혀와 입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라 할 만큼,

대다수의 사람이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만큼,

진정 쉽지만 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범사에 긍정적인 마음과,

남에 대하여 호의적인 마음을 천성적으로 가진 사람들은,

정말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조롱과 모독을 일삼아 남을 허물고 말겠다는 생각은 결국 자신을 허무는 것이 되고,

남을 영예롭게 하며, 세우는 일이 자신을 영예롭게 하며, 세우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지혜이며, 정의의 승리이며, 천국의 법칙입니다.

 

모독의 반대는 영예일 것입니다.

이웃을 영예롭게 하는 것이 곧, 그를 지으신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아닐까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감사와 찬양은, 그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섬기는 것입니다.

2008년 12월 11일 오전 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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