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Wsdom is proved right by her actions.
(Mt.11.19)
제1독서 이사야 48,17-19
복음 마태오 11,16-19
어떤 마을에 중년의 신사가 이사를 왔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지 별다른 짐도 없고 항상 혼자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요. 더군다나 그는 볼 부분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는 험상궂은 얼굴이라 사람들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우선 그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먹고는 “야! 너무 맛있는 걸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이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네 꼬마 아이들을 만나면 “야, 이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야. 맛있게 먹어.”하며 눈깔사탕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또 길가를 지나가는 동네 사람에게 “오늘은 돈 대신 이 시 한편으로 부자 되세요.”라면서 시가 적힌 메모지를 내미는 것입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는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우리 내일 또 만나요.”하고 손을 흔드는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마을에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름 대신에 똑같은 명칭으로 그를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그의 별명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험상궂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도 또한 사람들에 의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전달해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을 깨닫게 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이렇게 긍정적인 말을 함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또한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그런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갑니다. 마치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반대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광야에서 까실까실한 낙타 털옷을 걸치고 적은 음식으로 생활하며 그들에게 회개를 외치는 세례자 요한을 보고는 미쳤다고 이야기하고, 아무하고나 사귀며 생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보고는 주정뱅이라고 욕을 합니다. 자기만 옳고 남의 말은 들어 보지도 않는 이 세대였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완고한 세계를 장터에서 패 갈라 앉아 두 가지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비겨 꼬집습니다. 한 패는 통곡하며 장례놀이를 하는데 아무도 같이 통곡하지 않지요. 또 한 패는 피리를 불며 잔치놀이를 하는데 아무도 장단을 맞추지 않습니다. 통곡놀이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외침이고 잔치놀이는 예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 전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결국 슬퍼해야 할 때에는 슬퍼해야 하고, 기뻐해야 할 때에는 함께 기뻐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만 옳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에 철저하게 맞추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고 또 행복을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가 있습니다.
말한 것을 즉시 실천하는 사람이 가치가 있다.(엔니우스)
낙관론자
지금부터 90여 년 전인 1914년 겨울밤에 우리가 발명왕이라고 하는 에디슨의 연구소가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에디슨의 필생의 노력이 하룻밤 사이에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에디슨의 나이가 67세였으므로 사실은 재기불능의 재난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디슨은 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잿더미가 된 공장을 둘러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와 실패는 완전히 없어졌다. 이제부터는 실패 없이 성공하게 됐다.” 에디슨이 이 말을 하고 난 뒤 3주 만에 에디슨의 공장에서 축음기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늘 날 사무용품으로 많이 쓰고 있는 포스트 잇이라고 하는 메모지가 있습니다. 이 메모지도 사실은 실패에서 얻은 값진 수확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접착제를 만드는 회사가 사운을 걸고 강력접착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사운을 걸고 만든 접착제가 강력접착제가 아닌 약력접착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느 말단사원이 자기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강력접착제가 필요한 세상이라면 분명히 약력접착제도 필요할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이 약한 접착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찾아봅시다.”
조사해보니 강력접착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약한 접착제를 요구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이런 현실을 안 회사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포스트 잇을 만들게 됐고, 이 메모지 때문에 거금을 벌었다고 합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낙관적으로 보느냐 비관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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