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요셉 신부님과 매일 복음 묵상 - 영적 소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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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현아 | 작성일2008-12-13 | 조회수666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대림 2 주간 토요일 - 영적 소경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20대 초반 여성은 잘 노는 남자를 좋아하고, 20대 중반 여성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20대 후반 여성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 반면에 20대 초반 남성은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20대 중반 남성도 역시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20대 후반이 되어도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정말 남성들은 시각에 민감한 것 같습니다. 제가 버스에서 어떤 한국 자매에게 천주교에 대해 설명해주자 저와 함께 탔던 후배 신부가 “형은 대단하다. 난 저렇게 생긴 여자라면 말 안 걸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렇게 태어난 게 저 사람 잘못이냐? 껍데기를 보지 말고 영혼을 좀 봐라.”라도 대답했지만, 사실 우리들은 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긴 합니다. 문제는 그런 육체적인 눈이 정작 보아야 하는 것들을 못 보게 만드는데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오시기로 되어있던 엘리야였음을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예언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메시아가 오기 전에 그의 길을 닦기 위해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세례자 요한이 왔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왔다면 누구나 다 알아보았겠지만 세례자 요한을 누가 엘리야로 알아볼 수 있었겠습니까?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혹시 우리가 그 당시에 살았더라도 세례자 요한을 오시기로 되어있던 엘리야로 알아보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눈으로 본다면 두 분은 결국 같은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는 예언자들과 갈멜 산에서 대결을 합니다. 각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고 그 위에 송아지를 잡아 제물로 놓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 제물을 사르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바알의 예언자들은 사백오십 명이나 되었고 야훼를 섬기는 예언자는 엘리야 하나뿐이었습니다. 먼저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들이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해하면서까지 소리소리 질러보지만 하늘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이윽고 엘리야의 차례가 되자 그는 제물에다 물을 부으라고 합니다. 네 동이씩 세 번을 붓게 만듭니다. 그 물이 제단 주위 도랑까지 가득 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자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모두 태웠고 도랑에 괴어있던 물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태웠습니다. 제물은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제단과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하며 물은 세례를 상징하고 불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세상에 성령님이 오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희생을 ‘내가 받을 세례가 따로 있다’ 하시며 바로 ‘세례’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골고타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그대로 일어납니다. 세례는 옛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성령님이 내려오실 제단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물론 성모님을 제외하고) 예수님께서 세례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그분 위로 (불 대신)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사실 갈멜산에서 벌어진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현대에 이런 일이 파티마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태양이 땅으로 떨어지듯 내려오더니 모든 것을 말라버리게 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간엔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 대신 이번엔 성모님이 계셨습니다. 오순절 때 성모님과 사도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성령님이 내려오셨던 것의 재현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언가 조금 더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의 얼굴을 뵐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눈을 갖기 위해선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되새기며 우리는 영적인 눈과 육적인 눈 중에 어떤 눈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하고 대들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9,40-41)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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