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2.14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이사61,1-2ㄱ.10-11 1테살5,16-24 요한1,6-8.19-28
"부드럽고 강한 아름다운 공동체"
며칠 전 공동체 모임 시,
장상의 말씀과 더불어 어제의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공동체에 형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형제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단점이나 약점까지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건강하고 젊을 때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어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수도공동체나 부부공동체의 이치도 똑 같습니다.
어제 뜻하지 않게 모임 시,
형제들 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공동체는 비슷합니다.
전혀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문제없는 공동체가 오히려 비정상이요 문제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공동체가 살아있는 건강한 공동체라는 표지이며,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바로 공동생활입니다.
형제들 간에 곧 화해가 있은 후,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연상되면서 깨달음처럼 떠오른 말입니다.
“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애는 칼로 물 베기구나!”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이 정말 깨끗한 사랑이요 항구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애가 바로 그러합니다.
흐르는 물 아무리 칼로 내려 쳐봐야
곧 물은 아무런 흔적 없이 하나 되어 흐르듯,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 아무리 싸워도
곧 화해와 용서로 치유되어 하나 되어 물처럼 흐릅니다.
참 부드럽고 강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렇게 서로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들까지도 받아들여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끊임없이 흐르는 물 같은
깨끗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바로 바오로 사도가 고맙게도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주님 오실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이런 기쁨은 세상에서 오는 일시적 기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부터 샘솟는 기쁨입니다.
대림시기뿐 아니라 언제나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생활화 되어 제2천성이 될 때
부드럽고 강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특성은 기쁨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가 기쁨의 샘입니다.
하여 우리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우리 영혼은 우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주십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의 은총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밖에서 오는 세상 기쁨을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쁨은 잘 오지 않습니다.
얼마나 덧없고 허약한 세상 기쁨인지요.
지금 여기서 주님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만들어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슬픔도 전염되듯 기쁨도 전염됩니다.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최고의 복음 선포는 역시 이런 주님께로부터 오는 이런 기쁨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항구하고 부드럽고 강한 기쁨입니다.
주 하느님의 영이 이 미사를 통해 우리 위에 내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라고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죄악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해방을,
두려움과 불안에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둘째,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죽어 영혼 없는 사람이 됩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 수 있어도 가슴은 밥으로 채우지 못합니다.
한없이 텅 빈 사막 같은 가슴은 하느님만이,
사랑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이래서 기도입니다.
텅 빈 가슴을 하느님으로, 사랑으로 채우려 기도합니다.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 한결같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빛을 증언하러 온 세례자 요한은 물론
바오로 사도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불을 끄지 않습니다.
예언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할 때 영안이 밝아져 자기가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평생화두와 같은 물음입니다.
우리의 신원을, 정체를, 사명을 묻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요한처럼 대담하게 확신에 차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모두가 다 요한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독한 광야 세상에서 빛의 증언자로,
주님의 길을 닦으며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신원이자 정체성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로 주님께 힘을 받지 않으면
외롭고 쓸쓸한 광야 세상,
한결같은 구도자로 살아가기는 참 힘듭니다.
모두가 끊임없이 기도할 때
비로소 부드럽고 강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셋째,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모든 것에 감사할 때 모든 일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감사는 사람됨의 기본입니다.
감사할 때 모두의 사랑과 신뢰를 받습니다.
정말 감사할 줄 모르는 것도 마음의 큰 병입니다.
불평할 것 찾으면 끝도 없듯이 감사할 것 찾으면 끝이 없습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감사를 택하면 긍정적 낙관적 인생의 행복이요
불평을 택하면 부정적 비관적 인생의 불행입니다.
좋은 환경 중에도 살 줄 몰라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 참 많을 것입니다.
자기를 몰라서 불평이요 불행입니다.
자기를 바로 알면 감사한 것 천지입니다.
하느님과 이웃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감사했던 추억들 헤아려 보십시오.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 미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게 감사입니다.
그러니 감사는 바로 믿음과 겸손에 직결됨을 깨닫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진정 믿음의 사람, 겸손의 사람이요
참 부드럽고 강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이 밝은 영안으로 숨어계신 주님을 알아봅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처럼,
겸손과 감사로 영의 눈이 열린 사람만이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서 계신 주님을 알아봅니다.
오늘은 참 좋은 대림3주간 기쁨의 주일, 장미주일입니다.
주님은 오늘 강론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참 부드럽고 강한 아름다운 공동체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제가 고백성사 보속 시,
처방 전 보약 말씀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평화의 하느님께서 이 미사은총으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의 대림시기,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꼭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