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한 자유의 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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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열우 | 작성일2008-12-18 | 조회수46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내가 만든 예화 8 - 지독한 독재의 치하에서, 생명을 건 투쟁을 치루며 어렵게 자유를 얻어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의 가치가 소중히 여겨졌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의 억압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사람들마다 찬성하였습니다. ‘악법도 법이니, 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죽는다’ 고 말한 준법자이자, 악법의 희생자인 소크라테스를 죽이는 악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하며,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법을 폐지하고, 더 이상 법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는, ‘지상 무법주의’ 라는 또 다른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법에서 조차 자유를 선언하며, ‘무한 자유의 나라’ 를 선포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다! 해방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구속시킬 법 같은 것은 없다!’ 며 소리쳤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구속하거나, 제제하는 아무것도 없어, 마냥 자유를 만끽할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만민이 염원하는 ‘지상의 낙원’ 이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동이 터 해가 중천에 떠 오르도록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누가 나무랄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상에서 방뇨를 하거나, 쓰레기를 거리에 버려도 누가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며, 누구의 집이나 머무는 곳이 자기의 거처가 되었고, 누구의 것을 따지지 않고, 제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옷을 입던, 벗고 거리를 활보하던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거리마다 온갖 유흥거리가 동원되고, 술을 마시며 연일 축제를 벌였습니다. 아무도 일하지 않고, 누구도 놀고 먹을 권리만 있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자유가 이렇게도 좋은 것을-‘ 하며 자유! 자유! 를 노래하며, 자유의 선물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는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여 악취와 함께 벌레와 쥐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놀고 먹으며, 돌보지 않아 논과 밭에는 곡식이나 야채대신, 잡초가 무성하여져 뱀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청년들 마저, 학업을 접어두고 어른들과 함께 노름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생산하지 않고, 연일 벌이는 축제에 돈과 생필품이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어떤 법이나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힘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독점을 하고, 높은 가격이 될 때까지 팔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먹을 것이 없자, 초근 목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심지어는 뱀이나 벌레, 쥐까지 잡아 먹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지날 때, 폭행을 당하거나, 지갑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법이 없으니, 소유권이나, 소유관념도 사라져, 마음대로 훔치며, 강탈하여도 죄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나누어 주지 않고,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죄인이 되어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유부녀까지 범하여, 자신의 씨를 뿌리는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를 단죄할 법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자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약자들을 지켜 주던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는 강자만이 정의이며, 법이었습니다. 무한 자유가 끼친 무법지대의 혹독한 맛을 철저히 맛 본 사람들은 차라리 혹독한 법의 구속을 받았던 독재 시절이 차라리 나았다는 위험한 생각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던 군중들이었지만, 당면한 ‘민생고’ 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지상의 낙원을 만드는 것은 무한 자유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한 자유가 선물한 것은 낙원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을 선물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처럼 어렵게 얻은 자유라도 지킬 능력이 없다면, 이처럼 후퇴할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무한 자유를 누릴 만큼, 완벽할까요? 아담과 하와처럼, 누구도 견줄 수 없을 지혜의 왕, 솔로몬 임금도, 풍요와 무한의 자유를 감당하여 낼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 무한 자유와 풍요 속에서, 범죄를 저질러 그들의 낙원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한의 자유를 누리며 범죄에 이르고, 고난과 핍박 속에서 오히려 깨어나는 묘한 특성이 있습니다. 섰는 줄 알고 방종하면, 넘어지는 것도 순간입니다. 형설지공으로 건설한 낙원도, 일 순간의 방심과 방종으로 무너집니다. 혹독한 법이 자신을 지켜낸다면, 그리고 무한 자유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차라리 자신을 지키는 혹독한 법이 유익할 것이라는 위험한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자유를 잘 가꿀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지 않는다면, 자유는 더 이상 그를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자유는 그를 선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빛이 납니다. 악용하거나, 오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자유는 모독을 받고, 자유는 마침내 그에게 재앙을 끼치게 됩니다. 자유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여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 얻는 선물입니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절제이며, 경건을 소중히 여기는 능력입니다. 질서와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유는 허물어지고 맙니다. 질서와 법을 지킬 능력이 자유를 수호하며,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자유를 지켜냅니다. 자신에 의해 다스림 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방종은 자유가 아닌, 파멸을 선물하여 왔음을 인류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권리와 의무라는 두 바퀴의 수레에 싣려진 선물인 것입니다. 2008년 12월 18일 오후 2시 4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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