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꿈 속에서도 당신말씀을 듣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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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8-12-18 | 조회수626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복음: 마태 1,18-24 부계(父系)로 이어지는 유다인의 족보에서,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이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말은 실상 족보에서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예수님이 요셉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는지 오늘 복음이 설명한다.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한 사이였지만, 그들의 풍속으론 이미 법적인 부부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혼인식을 치르기까지 일년 동안 함께 살지 않는 것 또한 그들의 풍습이었다. 그런데 약혼녀가 자신도 모르는 아이를 잉태하였다는 말을 들은 요셉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지만 요셉은 이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만큼 진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요셉. 유다인에게 ‘의로움’은 율법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법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마음의 논리’를 따른다. 어떤 ‘마음’의 논리인가?
요셉은 꿈속에서 놀라운 천사의 말을 듣는다. 마리아의 아기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또 그 아기의 이름과 사명을. 꿈에서 깬 요셉은 두말없이 아기를 아들로 받아들인다. '인간적인 마음'을 접고, '하느님의 마음'을 따르는 논리를 요셉은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앞서 끊어진 다윗의 족보가 맥을 잇게 된 것이다.
그분이 다윗의 후손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방법이었다. 그 엄청난 계획에 요셉이라는 한 인간이 두말없이 순종함으로써 오시는 분에 대한 인간적 발판, 즉 합법적인 지위를 마련해 놓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헤로데의 살해 위험에서 그 아기를 구출하고, 나자렛으로 돌아와 성년이 될 때까지 지켜주고 보호해주었다. 그 모두 역시 꿈속에서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한 것이다. 떠벌리기 보다는 감춰주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의심하기 보다는 순종하는, 법의 논리보다는 마음의 논리를 따랐던 요셉.
또한 항상 꿈꾸는 요셉의 모습은 창세기의 성조 요셉과 너무나 흡사하다. 성조 요셉도 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꿋꿋이 기다릴 줄 알았던 침묵의 사람이다. 포티발의 아내를 탐냈다는 누명을 쓰고도 침묵할 수 있었던 것, 자신의 일을 충실히 행하며 감옥 안에서도 때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 약속을 잊어버린 시종장에게도 불평없이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에도 밑바닥 백성의 삶을 살피는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나라의 재정을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늘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조 요셉의 이야기 후반부에는 "주님이 함께 있었다."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요셉이 항상 주님이 곁에 계심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도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의식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그분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인다는 것, 그리고 그 말씀대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양 아버지 요셉과 성조 요셉의 공통점이다.
주님, 오늘 저희에게도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꿈속에서도 당신의 말씀을 알아차리도록 항상 깨어있게 하소서.
슈베르트- 밤과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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