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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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08-12-23 | 조회수612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순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리를 거스를 줄 아는 역행(逆行)이 바로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이다.
곧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어떤 종교든 속세의 계산법을 따르라고 말하는 종교는 없다.
그래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이란
실정법(實定法)이나 관례(慣例)를 말하는 것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나 ‘도(道)’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순리’는 속세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고
‘진리’란 하늘나라에서 살아가는 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느님에 관해서 알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로마 1:19-22)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마르코 10:28-31)
이제야 인생을 어슴푸레 알 것 같다.
그 동안 쾌락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았던 과거.
그래도 바르게 살려고 애썼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속세’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알게 한 것이었다.
제대로 기도하고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뒤늦게 옳은 신앙(?)을 가지면서부터는
‘속세’와 ‘천국’을 들락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수도승과 같은 금욕생활과 기도생활에 몰두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깨어있는 시간보다 깨어있지 못한 시간이 더 많은 것이 나의 문제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을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해결해나가려는 자세는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때는 확실히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믿음이 깊어지기(?) 전에는
하느님의 ‘상급(賞給)’을 너무 성급하게 기대했기 때문에 좌절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한참 지난 후에는
아직도 내가 부족한 것이 많아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고통을 주시어
나를 완전하게 만드시려고 하는가 보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아무 신앙도 갖지 못했던 학창 시절,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어느 날,
구원을 바라며 무턱대고 교회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또 술을 마시고 나의 탄생을 원망하면서
그리고 내 웃옷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빗물의 힘을 빌어 통곡했던 기억도 난다.
이 때 나는 ‘상급’의 가치를 충분히 느낄 때까지는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상급’을 주시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앙을 가지고 나서도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에 나에게 찾아온 공허함은 엄청났다.
그래서 이 공백을 어떻게 메우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답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아니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손자를 보고 기뻐하면서 다시 생명의 신비를 맛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법정 스님도 『산방한담(山房閑談)』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또 미국의 유머리스트이며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였던
샘 레빈슨(Sam Levinson, 1911-1980)은
“이 땅에 태어나는 아기는 모두
그의 작은 주먹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하나씩 불끈 쥐고 나온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리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하나씩 갖고 온다.
아기는 가장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깨어있지 못해서 현실도피를 하면서
고통을 망각하고픈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렇게 다짐하고 살고 있다.
무엇을 하든, 하느님께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에게 ‘상급’을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그리고 주님께서 주실 삶의 열매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여 불평하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매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삶, 이것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삶이며,
이러한 선택도 모두 나의 몫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확실한 것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 때까지는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잡고 있다.
“항상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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