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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뻐하고 기뻐하여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4 조회수70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성탄 대축일 - 기뻐하고 기뻐하여라

 

며칠 전에 기숙사 문지기 아저씨와 잠깐 대화를 나누면서 성탄 인사를 먼저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시겠네요?” 했더니 그 분이 “맛있는 거 먹는 것보다 먼저 내적으로 기뻐야지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맞는 말씀이겠지요. 혼인잔치가 있다면 혼인이 먼저이고 이어지는 것이 잔치이니까요. 그런데 가끔은 잔치가 주가 되고 그 잔치에만 너무 머무르려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왜 잔치를 하는지, 즉 왜 기뻐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처녀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구약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처지는 하나의 징벌이요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도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적으로 예수님은 모든 처녀들의 마음에 잉태되십니다. 제가 말하는 처녀는 하느님 앞에 선 모든 순결한 신부들, 즉 우리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의 신랑으로서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더 이상 신랑이 없는 외톨이 처녀가 아니라 참 신랑을 맞이한 행복한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한 자매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볼 때는 부족한 것 없는 사람입니다. 남편도 성실하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사는 것도 부족하지 않아요. 성당도 열심히 다니고 봉사활동도 하고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가끔은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 무언지 모를 공허함에 눈물을 흘리곤 해요. 뭐가 부족한지도 모르겠고 ... 잘 모르겠어요.”

이 자매님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처지를 설명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남편이 있다고 하지만 남편이 자신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 자리는 오로지 예수님으로만 채워집니다. 우리 모두의 유일한 남편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밤에 우리의 신랑이 세상에 탄생한 때입니다. 누구도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처녀의 몸에 잉태되고 태어나신 분입니다. 혼인잔치를 하는 이유는 혼인을 했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랑은 겨울밤에 태어나셨습니다. 겨울은 춥고 고통스러운 때이고 밤은 빛이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을 나타냅니다. 고통스럽고 어두운 곳에 희망과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형수 아들을 둔 한 자매님이 당신 아들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제 아들은 사형수였어요. 지금은 이 세상에 있지 않죠. 큰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 집행만 기다리고 있는데 하느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수감자들에게도 하느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우리가 그에게 하느님을 전해 준 것이 아니라 그 애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게 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형 집행이 결정 되자 다른 사형수들은 울며불며 죽음을 두려워했고 억지로 끌려 들어갔지만 제 아들은 당당했어요. 오히려 신부님께 건강에 해로우니 술과 담배를 줄이시고 운전도 조심하시라고 했고, 눈물을 흘리시는 수녀님을 위로까지 해 주셨어요. 좋은 데 가는데 왜 우시냐고. 그리고는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어요.”

그는 청부살인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정권 교체 때 마지막으로 사형수들을 모조리 사형시킨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사형집행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의 삶은 당연히 추운 겨울밤이었을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에게 삶의 이유는 없었겠지요. 그저 어둠 속에서 헤매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삶의 고통도 이만저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고통스러우니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봄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세상엔 따듯함도 있고 빛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세상에 살 때보다 더 큰 자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엔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겨울밤에 태어나신 이유입니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겨울밤은 그 분이 태어나심으로 인해 축복의 밤이 되었습니다. 아니 그 분이 태어나신 곳은 찬란한 빛으로 감싸였습니다. 하늘의 별과 천사들이 영광스러운 빛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였습니다. 이제 춥고 어두운 얼어붙은 마음은 사라지고 따듯한 기운과 생명의 빛이 나타났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어서 죽어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축복이 된 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 온 밤에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랑은 가난한 마구간에 태어나서 가난한 목자들을 먼저 초대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세상에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마구간 역시 사람이 선택하지 않는 냄새나고 추운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가난하게 태어나야만 가난한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오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궁궐에 태어났다면 가난한 목자들이 어찌 근처에나 갈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신랑은 누구나가 다가가기 편하도록 가장 가난하게 가장 낮은 곳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소외된 이들을 먼저 부르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임마누엘, 즉 항상 너희와 함께 하는 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으며 누구도 혼자 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는 고등학교 때 심한 고독을 체험했습니다. 세상엔 나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을 넘어선 절대 고독을 느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있었지만 그들은 더욱더 외로움을 가중시켰습니다.

외롭다고 하니까 한 개신교에 다니던 친구가 “너 천주교 다니지? 예수님이 함께 계신데 왜 외로워?”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누가 그걸 모르나?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흘려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머리에 남아서 계속 떠올랐습니다. 사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옆에 계시다고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엔가 고독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런 고독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증가하면서 더 그분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어떻게 신부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분을 잊어도 그 분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 분을 떠나도 그 분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그런 신랑이 정말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고 실제로 우리 대신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신랑은 멀리 떨어져있는 우리와 무관한 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분입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눈물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기뻐하고 기뻐합시다. 이것이 그분께서 오늘 바라시는 유일한 것입니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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