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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4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5 조회수492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탄 대축일 낮미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18<또는 1,1-5.9-14>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인 요한 복음의 서문은 다른 복음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오늘 서문은 '말씀' 즉 '로고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로고스는 BC 3세기부터 AD 2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헬레이즘의 스토아학파에서 즐겨 사용했던 절대 이성으로, 스토아학파는 로고스와 합일을 최고 가치로 여겼습니다. 오늘 복음은 말씀을 하느님과 예수님으로, 또 생명의 근원으로 등치시키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이 공관 복음에 비하여 조금 난해한 것은 이러한 로고스사상이 스며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은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한처음에는 하느님만 계셨다는 뜻이며 우리 그리스도교의 절대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은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로 시작하고 있으므로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하였으므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말씀은 그분이신 예수님이라 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예수님의 신성을 더 확실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서문의 의도는 '하느님은 말씀(로고스)으로 존재하시고, 말씀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빛은 예수님이시며 생명의 근원이다'는 등식을 성립시키므로 써 말씀 즉 로고스가 하느님이심을 알려주려는 뜻인듯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진리의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며 불의가 판치는 세상은 어둠의 세계이며 어둠의 세계는 곧 죽음의 세계로 이어지므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의 삶뿐임을 묵상토록 하게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세계를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둠의 세계를 광명의 세계로 만들어야 하고, 어둠의 세계를 광명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하고, 그 빛은 바로 오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온 누리에 알리는 큰 별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찬란히 빛나는 빛은 어둠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요한 14,6),' 또한 죽음의 세계에서 영원한 세계로 이끌어 주는 '부활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요한 11.25) 하였습니다.

이러한 큰 뜻이 담겨있는 성탄 트리의 맨 위 큰 별은 지금 사라져 버렸습니다. 현재 개신교 단체에서 설치 관리하는 서울 시청앞 광장의 대형 성탄 트리에는 큰 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십자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리는 것보다는 교회 홍보가 우선이라는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으로 살아가는 이러한 육의 삶을 청산하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 (요한 3. 5)고 하였습니다. 또한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요한 3, 6) 하였으며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 6. 63) 셨습니다. 이처럼 요한 복음은 철학적인 논리적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은 이름을 청사에 길이 남기는 것이며 이름을 청사에 길이 남기는 것은 예수님처럼 진리의 삶을 살아야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청사에 이름을 길이 남겨야만 영원한 삶으로 부활하는 것이며, 세세대대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임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진리의 삶을 살아서 역사에 길이 남을 삶을 저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의미만큼은 바르게 알아야 이런 삶을 동경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원한 삶의 의미인 부활을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을 비추는 빛은 구름에 가려서 그 빛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구름이 걷혀서 참빛이 이 땅을 두루 비추기를 기대하며 어제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하였습니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하였습니다. 이제는 타율적인 율법보다는 은총에 감사하며 진리 속에서 살아야 할 때가 왔다는 말씀입니다. 로고스적 관점에서 바라본 율법은 보잘 것 없는 것이므로 앞으로는 로고스의 시대가 열렸으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루카 5, 38)' 언제까지 구시대의 율법에서, 구시대의 사고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또한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유형의 모습이 아닌 무형의 말씀으로 존재하므로 아무도 하느님을 볼 수 없으며 하느님은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뜻으로 묵상하였습니다.

'무릇 진리를 아는 이는 그 빛을 알고, 그 빛을 아는 이는 영원을 아느니, 사랑만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 7,10,16 ' -전 바티칸 성 염대사 논문집에서- ) 이 한 말씀으로 오늘 묵상을 모두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광명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셨으나
짙은 구름은 빛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빛은 영원하기에 구름이 걷히면 다시 이 세상을 훤히 비추시리라 믿습니다.
자비의 실천으로 구름이 걷힘을 알려 주셨으니 구름이 걷힐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자비의 길로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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