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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72)모르면 가만이라도 있어야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6 조회수565 추천수5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20 오후 11:08:28

 

2004년2월20일 연중 제6주간 금요일 ㅡ야고보2,14-24.26;마르코8,34-9,1ㅡ

 

    (72)모르면 가만이라도 있어야지

                               이순의

                           


ㅡ능멸ㅡ

정신대 누드 화보집으로 텔레비전이 시끌시끌했다. 역사의 외곡을 넘어서 식민의 고통으로 민족이 말살당한 일제하의 정신대는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감히 입을 열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이다. 그런 치욕적 화두를 사진에 담아 아픔을 알리고자 했다고 한다.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여배우가 젓 가슴을 열똥말똥하고 서서 알듯 말듯 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진이 어떻게 역사를 알리기 위한 사진인가? 정신대는 강제징집 된 여인들의 군대다. 일군을 유혹해서 돈을 벌려고 했던 용병이 아니다. 조신한 요조숙녀들이 어느 날 끌려가서 총칼 앞에 굴욕을 팔아야 했던 백의민족의 피다.

 

누더기 포대 조각으로 칸을 막은 반 평짜리 판자 위가 아닌, 화려한 침대위에 융단을 깔아놓고 쪽발이 일본군 백 명을 세워놓고 그들 앞에서 동영상을 찍어 증거 하라고 강요했더라면 그래도 감히 찍을 수 있었을까? 정말로 이 세대가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시대를 산다고 하지만 너무해도 너무하는 것 같다. 차라리 역사의 아픔을 아는척 해달라고 아무도 바라지 않았으니 가만이나 있었으면 후벼 파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주 교회신문에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라는 회고록에는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답답한 심정을 기록하고 있다. 1974년10월 성년(聖年)대회를 마친 주교단과 신자들이 유신정권 규탄과 지학순주교님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하게 되었다. 당시 외국에 계셨던 추기경님께서는 언론을 통해서 한국의 상황을 접하게 되고 동시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담당 주교님으로 부터 "왜 주교들까지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느냐?" 이해할 수 없다는 질문을 받게 된다. 추기경께서는 "주교들이 왜 거리에 나오느냐고 묻기 전에 도대체 상황이 어느 정도 악화 됐기에 주교들까지 거리에 나와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한국에 인권과 정의는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종교가 한 국가를 이해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추기경께서는 그때 얻은 불면증으로 지금까지 수면제와 신경안정제가 없이는 잠들지 못 하신다고 한다. 그것은 국가의 아픔이 추기경의 아픔이며 한국교회의 아픔인 것이다. 가톨릭은 하나이며 세계가 공유하고 일치되는 교회로 신장을 도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의 것이며 종교는 국민의 편이다. 차라리 한국의 아픔을 알아달라고 하지 않았으니 우리추기경의 가슴이나 후벼 파시지 말을 것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서울이라는 본당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이었으므로 그 사회는 편협과 지역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신앙공동체에서 내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거나 신앙생활에 누를 끼칠 만큼의 잘못을 범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인 선입견을 받아야 했다. “###사람은 뒤끝이 항상 안 좋더라. 그러니까 그쪽 출신하고는 오래 사귀면 안 된다.” 던지! 원인을 알 수 없는 경계심으로 인해 나와 상관도 없이 비위가 뒤틀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반모임에를 갔는데 속으로 상당히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반장님께서 "가톨릭 농민회는 빨갱이 단체고, 그 놈들이 가톨릭의 이름을 걸고 못 된 짓은 다 한다."고 하셨다. 당시의 가톨릭 농민회장은 나의 고향마을 옆 동네 사람이었으므로 그 분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참고 앉아있기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날은 참았었다. 그 다음 모임에 갔었는데 반장님의 적대감은 그대로 세뇌된 전씨의 측근 같았다.

 

"광주는 빨갱이 집단이야. 그거 다 지들이 살것다고 하는 짓거리지, 모조리 싹 잡아죽여야 한다꼬." 라고 말을 꺼냈다. 참지 못 했다. 나는 반원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고 말은 것이다. "오늘 밤에 대한민국 군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의 집에 들어와서 당신의 두 아들에게 총을 쏘고 나면 내일 아침에도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지 지금 당장 실험을 해 볼까요? 당신도 흰 수건 머리에 뒤집어쓰고 미친년 되어서 돌아다닐 거요. 가톨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가톨릭농민회를 빨갱이 단체로 알고 있는 반장이 당신 한명이기를 바랄뿐이요."

 

그 후로도 나는 그 반장님께서 소집한 반모임에를 아주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독한 말을 그날 한번으로 끝내지 못 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성당 터가 바뀌고 성당이 다 지어지고 섬에서 살고 와서까지 서울 살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입에 담아야 했다.

"오늘밤 국가의 군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의 집에........."

차라리 빨갱이가 뭔지 모르면 입이나 다물고 있다가 제 자식한테 쏟아지는 지독한 독성이나 듣지 말 것이지?!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 만큼도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죽는다. 가졌다고 목에 힘줘봤자 땅 반 평이요, 배웠다고 잘난척 해봤자 아는 만큼뿐이며, 옳다고 뻐겨봤자 제 생각이다. 그런데 신앙 공동체 안에서조차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축으로 놓고 원을 그리고 있다.

"왜 신부님은 저런 인간을.....,. 왜 수녀님은 저런......,"

제발 그러지 말자!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저 신부님과 저 인간이 맞아서 맺어주신 거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저 인간에게 저 수녀님이 필요해서 역어주신 거고, 농민은 소외되고 있어서 교회가 힘을 모아줘야 하는 거고, 광주는 양민이 총칼에 쓰러져서 맺힌 한풀이 하는 거고, 한국의 주교님들이 주교관을 쓰고 시위대의 선두에 서야하는 것은 민중의 편이 되어주어야 했던 거고, 정신대 할머니들이 노구를 이끌고 매 주마다 주일대사관 앞에서 분노하는 것은 감히, 감히 입에 담기조차 죄송한 착취가 있었던 거고.......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요구를 하고 계신다. 그냥 방에 걸어둔 십자가를 보고 십자가를 진 주님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 희생된 할머니들처럼, 민중 앞에 선 주교님들을 변호해야 했던 추기경님의 고뇌처럼, 농민의 동반자가 되어 주어야 했던 단체처럼, 피 흘리고 죽어간 광주처럼, 처럼, 처럼은 아니더라도 남의 십자가를 우습게 보지말자.

 

남의 아픔을 모르면, 남의 고통을 모르면, 남의 희생을 모르면, 남의 슬픔을 모르면, 남의 실망을 모르면, 남의 패배를 모르면, 남의 기권을 모르면, 남의 좌절을 모르면, 남의 포기를 모르면....... 남의 어두운 질곡들을 모르면서 잘난 척하지 말고 가만이라도 있어주는 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아니겠는가! 만물이 남용되고 육신과 정신까지도 오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교회 공동체 그리스도인은 절제하는 십자가를 져야한다.

 

잠심하며 기도해야한다. 아직도 따라서 져보지 못한 진정한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신앙하는 나의 화두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든지 누군가를 능멸한 적이 없는가?"

 

ㅡ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2,1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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