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겸손 (성거산지기 신부님 대림3주일 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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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시원 | 작성일2008-12-30 | 조회수84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Photo by 성거산지기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
성거산의 성탄구유
대림제 3주일(자선주일) 요한 복음 1장 19-28절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여자에게서 태아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은 이 복음에서 주님으로부터 전폭적인 인정과 함께 찬사를 받습니다.
오세영 시인의 '12월'이란 시(詩)가 있습니다. 이 시는 마치 세례자 요한의 삶을 두고 지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뛰어난 언변과 타고난 지도력으로 당대 백성들에게서 큰 추앙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삶이 얼마나 경건했던지 세상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야말로 오시기로 된 메시아일거야'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세례자 요한은 진정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신원,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 '예수님이 주연인 연극에 가장 충실한 조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앞에 자신은‘신발 끈조차 묶어드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며 자신을 끝도 없이 낮췄습니다. 하느님의 사업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이 더욱 드러나도록 조연으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주연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연이란 그 영화의 흐름을 끌고 가는 인물 즉 주인공을 얘기 하죠~~ 조연은 그 주연이 영화의 흐름을 쉽게 끌고 갈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사람입니다.
빛 앞에 서면 그 화려한 빛과 함께 그 뒤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깁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화사한 밝음과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어두움. 우리의 삶도 이 밝음과 어두움을 참 많이 닮았다고 봅니다. 어느 누구나 밝음을 향해 달려가지 어두움에는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 바램은 다 이루어질 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두운 그늘에 만족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 조연이라는 자리에 대하여 잘못된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늘 삶의 주연이 되고 싶어서 늘 조바심 내며 각박한 경쟁의 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은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을 뿐 언젠가는 우리 모두 어두운 배경이 되는 역할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늘 밝기만 하다면, 삶의 굴곡이 없으면 그 인생은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밝음을 선호하는 우리의 욕심이나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에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오로지 빛이 되겠다고만 하는 그 욕심과 집착입니다. 밝음도 어두움도 각각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그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실루엣이 나옵니다. 우리가 배경이 되어 주는 그림자의 역할을 어둠이나 결핍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조화는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밝음이 없는 어두움. 어두움 없는 밝음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빛을 두드러지게 하는 어둠의 소중함은 여기서 빛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나 시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하는 어두움에 대한 예찬을 작품으로 남겼던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이며, 별을 빛나게 하늘처럼 밝음에 대한 어두움이 되는 일입니다. 즉 Back ground 되어주는 일입니다. 다른 이들의 빛을 위해 자신의 어두움을 받아주는 자세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두움으로 희생 할 수 있는 자세는 그런 넉넉함과 성숙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룩하기 위해 빛으로 오시는 그분을 위해 기꺼이 어두움이 되어주는 자세는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입니다. 남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은 앞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위해 오시는 주인 공 예수님의 자리를 기꺼이 내드리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물러설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시골 본당에 있을 때 매년 성탄 때가 다가오면 제가 손수 구유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젊은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구유를 설치 해보지 않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몇 년을 손수 만들다가 이렇게 하면 아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유를 잘 만들건, 마음에 안들건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맡겨 보았습니다. 아름답게 꾸미지는 못했지만 정성과 열성을 가지고 많든 구유였기에 아이들도 좋아하고, 교사들도 자기들이 만든 구유라 그런지 더욱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탄을 준비하시는 여러분! 겸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겸양지덕을 지닌 사람을 원합니다. 낮출 줄을 알고 물러 설 줄 아는 법칙을 깨우친 사람이 겸손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겸손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을 받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사람을 좋아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 겸손한 행동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 때문에 불행해지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권력 때문에 폐가 망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대단히 덕망이 사람도 어느 날 말 한마디 실수를 하게 되어 공덕을 일순간에 잃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친절하고 예의 바른듯한데 은연중 자기가 최고라는 듯 과시 하는듯한 행동과 말을 생각 없이 마구 뱉어내어 빈축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말을 너무 많이 하다가 문제를 많이 만들어 냅니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많은 공을 들이고도 겸손하지 않은 언행으로 얼굴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겸손함은 우리 인간 행위 중 최고 미덕행위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어 상대방을 높여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남을 높인다고 해서 남을 불편하게 하면 오히려 그것이 교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지위가 낮은 사람과 이야기 할 때는 항상 겸손하게 행동해서 상대방을 존중 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해야 됩니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겸손한 사람들은 그 티를 들어내지 않습니다. 부자든 보통사람이든 남을 도와주는 일이 있을 경우에 생색을 내면 그 공이 사라지므로 남이 모르도록 비밀스럽게 감추어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지기를 바랍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첫 번째 자리는 회개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의 길을 걷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덜 중요한 역할, 그늘에 가린 자리를 사랑하는 태도를 우리는 요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주님이 탄생하실 구유입니다. 매년 성탄을 맞이 할 때마다 우리를 구유를 만드느라고 소란을 떱니다. 그러나 예수 없는 구유'가 아니라 '예수가 살아 숨쉬는 구유'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정말 살아 숨쉬는 구유를 올 성탄에는 만들 수 있도록 준비를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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