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구한 것과, 그 열쇠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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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열우 | 작성일2009-01-02 | 조회수44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모든 계명을 완전히 지켜왔다는 부자 청년이, ‘무엇을 더 하여야 완전하여 질 수 있을까요?’ 라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아는 지혜를 얻으면 하느님처럼 완전하여 질 것으로 믿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처럼, 태초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2000년 전 이스라엘의 부자 청년,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에 이르기까지 완전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절규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예정, 계획은 베일에 싸여져, 필요할 때마다, 내려주시는 계시에 의해 부분적으로 조금씩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느님처럼, 완전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해주는 지혜를 줄 것 같은 선악과를 따먹어, 결국 눈이 밝아졌으나, 자신들의 벌거벗은 알몸만 인식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이는 장님이 코끼리의 몸통이나, 다리를 만져, 벽이나 기둥을 연상하듯, 부분, 부분을 아주 조금씩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완전하여질 수는 없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처럼 완전하여 지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주신 답은, ‘네가 완전하여 지고자 할진대, 네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를 얻을 것이라’ 는 말씀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악과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느님처럼 완전하여지는 길은, 선과 악을 아는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쳤다 해도,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자들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주린 사람들에게 먹고 마시게 하며,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며,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 온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우고, 허물고, 믿고, 사랑하라’ 는 말씀일 것입니다. ‘백조의 호수’ 에서, 마법에 걸려 백조의 모습이 되어버린 공주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줄 비법은 생명을 건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은 천하 만민의 죄악을 없애주는 신비의 힘입니다. 사람들은 예언, 신령한 언어, 지식, 기적을 일으킬 믿음을 구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구원에 이르게 할 수가 없는, 부분적인 것일 뿐이며, 어른이 되기 전, 아이들의 말과 생각과, 헤아림이며, 실상이 아닌, 거울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나라의 언어나 천사의 언어도, 예언하는 능력이나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달아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그것은 전체중의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믿음이나 소망보다 더 나은 사랑이라야, 어른처럼, 실상을 보는 것처럼, 완전하고 완벽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부자 청년이 구하였던, 그리고 온 인류가 오늘도 부단히 찾고, 또 찾는 완전에 대한 소망의 열쇠는 어떤 특별한 은사가 아닌, 사랑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난제의 열쇠이며, 인류 불행을 해결하는 최선의 대책입니다. 사랑 속에, 죄 사함도, 행복도, 인류를 행복하게 하여 주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온 천하 만물이 다시 천국과 낙원으로 복원될, 하느님의 지혜와 전능하심이, 사랑 속에 있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뜻이며,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의 본질이며, 사람이 하느님의 완전에 도달할 길이며, 완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오심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의를 실현시키는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이길 무기는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사랑은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세상을 지킵니다. 사랑은 불빛처럼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게 합니다.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차게 된다면 이미 천국입니다. 2008년 12월 29일 오전 8시 56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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