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월 3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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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1-03 | 조회수893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1월 3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 요한 1.29-34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제대로 된 이정표>
등산을 다니면서 체험하는 바입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산을 오르다 보면 길을 잃어버리거나 헤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해라도 떨어지면 상황은 심각해집니다. 길 잃고 헤매다가, 해 떨어지고, 체온 떨어지고, 비상식량 떨어지고, 그러면 꼼짝 없이 사면초가에 빠지고 말지요. 생명의 위기상황 앞에 직면합니다.
그런데 산에 자주 다니면서 요즘은 요령이 좀 생겼습니다. 길이 애매해지면, 전반적인 산세나, 계곡의 흐름이나, 나무들의 모양새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대충 산길의 방향을 잡는데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이정표’처럼 고마운 것이 다시 또 없습니다. 하산 길에 한참 길을 헤매다가 ‘매표소’ 몇 Km 라고 정확하게 적힌 이정표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그제야 안심이 됩니다.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이정표는 정말 고마운 존재입니다.
어떤 면에서 세례자 요한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야할 길을 정확하게 제시해준 제대로 된 이정표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제대로 된 안내자 하나 없이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위험하게도 이정표 하나 없는 험한 산길, 폭설이 내린 깊은 골짜기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기 저기 암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짜 메시아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해 백성들을 현혹시켰습니다. 불안한 표정의 백성들은 이리 우르르 몰려갔다 저리 우르르 몰려갔다 하며 오합지졸처럼 행동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깎아 지르는 낭떠러지인줄도 모르고 직진만 하다가 부지기수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어둠과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백성들 앞에 세례자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라도 무척 달랐습니다. 헛된 맹세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지했습니다. 말과 행동에 신뢰가 갔습니다. 백성들도 제대로 된 예언자임을 직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시자,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 자신을 향해 다가오시자, 세례자 요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하게 안내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예수님에게로 쏠립니다. 세례자 요한만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 마침내 나타나신 진짜 주인공을 향해 삶의 방향을 돌리는 순간입니다. 그간 세례자 요한에게 집중되어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이제 제대로 방향을 잡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세례자 요한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한 훌륭한 이정표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수도자의 삶, 사제의 삶은 어찌 보면 이정표로서의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시는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도 성공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나날은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에, 우리 삶의 배경이 자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흔적을 발견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 안에서 구원에로의 화살표를 발견합니까? 우리의 생활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생명에로 향하는 이정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4번 / 주께 찬양 드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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