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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4일 야곱의 우물-마태 2, 1-12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4 조회수522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마태 2,1-­12)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이 세상에 빛이 없다면 다른 어떠한 것도 있을 수 없고 생명도 없게 되기에 빛은 곧 생명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빛을 제일 먼저 창조하셨습니다.(창세 1,3)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빛은 가려져 어둠이 땅에 드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헤로데 왕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자 동방 박사들은 “그분의 별을 보고”(2,2) 빛을 찾아 먼 길을 떠났고, 마침내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말구유 위에 떠 있는 별을 보고는 더없이 기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라고 모든 면에서 다른 이들과 특별히 달랐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독 이들만이 메시아를 찾아 먼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이 땅 위에서 먹고사는 일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하늘’의 일에도 깊은 관심과 갈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의 일에 관심을 가졌기에 하늘에 이상한 별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별을 보고 깨달았을 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예물을 준비해 유다인의 왕을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그 길은 가까운 길도 쉬운 길도 아니었습니다. 낙타를 타고 터벅터벅 몇 달을 걸어가야 하는 먼 여행입니다. 사막을 지날 때 물이 없어 고통을 겪어야 하고, 골짜기를 지나갈 때 맹수와 도둑의 위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메시아를 만나고자 그 험난한 길을 “그분의 별을 보고”(2,2) 그 별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을 때 예루살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생각 없이 별이 인도하는 대로 온전히 별에 의존하여 찾아온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늘에 관심을 가지고 하늘의 일을 살피는 동방 박사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하느님이 허락해 주신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고 오다가 자신들의 생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스라엘 왕은 당연히 예루살렘 궁궐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자신들의 생각과 일반 상식에 의지해 궁궐로 향했기에 더 이상 별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해 오다가 가끔씩 엉뚱한 길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인간의 상식과 자기의 판단을 의지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저버리고 경험에 의지하거나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의지하기에 때로는 실패해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상식대로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이 살고 있는 궁궐로 찾아가 왕이 나신 곳을 물어보니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습니다.”(2,3) 그래서 결국엔 이 일로 헤로데 왕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살해한 것입니다. 물론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은 이집트로 피신합니다.(2,13-­18 참조) 우리가 아무리 경험이 많고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1코린 1,25) 하느님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도 내 경험과 상식에만 의지한 결과 실패를 경험하고 어려움에 처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빛을 따라가지 못해 실패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빛 가운데로 향하지 못해 절망 가운데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빛을 찾아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 합니다. 빛이 되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왕이 나실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된 말씀을 듣고 곧바로 그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다시 길을 나설 때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2,6-­9 참조) 우리도 성경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나설 때 다시 별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콜로 3,1)라고 했습니다.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면 거기는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땅을 내려다보면 걱정·고통·괴로움·절망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2)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를 보면서 살아왔는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주님의 일은 관심 밖이었고 세상일만 바라보며 육신을 생각하여 어떻게 하면 재산을 많이 모을까, 어떻게 하면 즐길까, 어떻게 하면 출세를 할까 등 이러한 것에만 관심을 두며 살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동방 박사처럼 ‘하늘’ 주님의 일에 마음의 우선순위를 둘 줄 아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일을 할 때 하느님을 뵙게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만 바라보고 그분만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삶의 중심과 우선순위가 하느님이 되는 바로 그때, 그래서 날마다 그분의 ‘별’을 쳐다보며 성령의 인도에 의지하여 하루하루 인생길을 걸어갈 때,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신”(마태 10,30) 하느님께서 우리 일상의 다른 필요도 몸소 챙겨주실 것입니다.
정애경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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