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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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1-05 | 조회수46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공현 후 월요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17.23-25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복음 선포의 총론적 말씀인듯 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란 표현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았지만 갈릴래아 사람도 이방인 취급을 받은 것은 뜻밖의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사마리아인과 갈릴래아인은 똑같이 이방인의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 복음서에서는 그렇지 않는 것이 사실 더 의아한 부분이었습니다.
유대왕국은 솔로몬 통치시대인 BC 930년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북이스라엘(사마리아와 갈릴래아)은 BC 720경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북이스라엘 지역은 앗시라아인이 다수 거주하였고 이주해 온 앗시리아인과 강제 통혼정책으로 순혈성을 상실하여 이방인으로 취급당하였습니다.
남 유대왕국도 BC 586년에 바빌로니아에게 정복되어 첫 성전이 파괴되고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바빌론 유수시대가 지속되다가 페르시아에 의해 바빌로니아가 멸망된 후 BC 536년부터 귀환하기 시작하여 성전재건 작업을 시작하고 구전으로 내려온 율법을 그때부터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생뚱맞지만 故 전태일과 그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생각나고, 故 장준하 선생님과 故 문익환 목사님의 관계가 생각납니다.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부르짖으며 이 땅의 나이어린 노동자를 대변하며 1970년 11월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분신하여 22세의 한창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아들의 이런 분신사건이 없었으면 그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이름 없는 할머니로 우리는 그분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헌신하여 이 땅의 노동운동의 어머니로, 또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을 이끌어 가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故 문익환 목사님은 성경을 공동 번역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였으며 윤동주 시인과 함께 동문수학했던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1976년부터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여 그 후 18년간의 삶을 살으시며 여섯 번의 옥고를 치루며 11년을 감옥에서 보내셨습니다.
60세가 다 되어 이처럼 고난의 길을 걸었던 계기는 오랜 친구였던 사상계의 편집인이셨던 故 장준하선생님의 75년 의문사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야 예수님을 더 가깝게 알 수 있었다는 말씀을 통해서 왜 그처럼 힘든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세례 후에 홀로 광야에 나가셔서 수행하시다가 오늘 복음에서처럼 세례 요한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광야에서 나오셔서 회개할 것을 요구하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친척이므로 남남도 아니고 또 세례 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았으므로 스승님처럼 존경하셨던 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잡혀갔으니 이소선 여사와 故 문익환 목사님의 경우처럼 저역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회개하라는 그 대상은 헤로데를 비롯한 불의한 기득권층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회개에 대하여는 묵상할 때마다 자주 생각하지만 우리 교회는 회개의 뜻을 바르게 알아서 회개의 대상에게 당당하게 회개를 요구하고 우리 교회에서도, 우리 교우들 사이에서도 교우들에게는 회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말씀을 실천하여야 하고 이를 실천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늘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가면 늘 죄인이 되어야 하므로 신바람도 없는 요즘 세상 살이에 위안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더 답답할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막연히 죄인이라는 관점보다는 우리 인간들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행위에 대하여 죄의식을 가져야 하고 이를 회개하여야 하는 것은 백번 찬동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알려주는 죄는 이런 의미보다는 연좌제 성격인 원죄가 더 가까운 듯 합니다. 저는 죄인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좀 더 신나고 멋있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유대민중들이 생각하는 죄에 대한 생각과 지금 저희들이 생각하는 죄의 의미도 다르고 당시 그들의 정서와 지금 저희들의 정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또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죄의 댓가를 치룰 생각이며 구원으로 죄를 용서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불행을 외면한 잘못은 늘 반성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첫 복음 선포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입니다. 회개의 의미는 위와 같이 생각하고 있으나 복음을 묵상하며 사실 '하늘 나라'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복음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의 의미와 하늘 나라에 대해서 바르게만 이해하여도 우리 신앙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늘 나라' 와 '하느님의 나라'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른 복음서에서는 모두 '하느님의 나라'로 기록하고 있으나 마태오 복음에서만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하늘 나라)'는 구약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고 신약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검색시스템으로 검색한 결과, 하느님의 나라는 지혜서에 딱 한번(지혜10,10)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그런 나라를 건설하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난 후 부터는 복음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고 우리 종교의 경전 이전에 인류의 영원한 지혜서로 생각하며 복음서를 더욱 가까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참된 주님의 가르침이 신화적 요소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이 사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런 신화적 요소들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아주 요긴하였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장애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장애요소를 해소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이를 더 공고히 하려는 근본주의 신앙관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하늘 나라는 하늘이 아닌 이 땅에 건설하는 것이라는 것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근본주의 신앙관은 이제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변해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신앙관으로 새로운 시대를 선도해 나갈 수 있을지, 이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늘 묵상은 복음 묵상이라기 보다는 평소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시며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회개와 하늘 나라를 바르게 알려주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불의한 지도층에게는 당당하게 회개를 요구하고 저희들은 사랑의 실천으로 동참하므로 써 이 땅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침묵하는 저희 교회와 저희들을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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