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에 쌓은 재물; 후손이 누리는 복-룻기11 | |||
---|---|---|---|---|
작성자이광호 | 작성일2009-01-06 | 조회수57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하늘에 쌓은 재물; 후손이 누리는 복-룻기11 <생명의 말씀> 보아즈가 성문께로 올라 가 앉아 있는데, 마침 자기가 말하던 그 친척이 지나갔다. "여보게, 이리로 와서 앉게나." 하며 보아즈가 그를 부르자, 그가 발길을 돌려 와서 앉았다. 보아즈는 마을 장로들 가운데서 열 사람을 불러, "이리 와서 앉으십시오." 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보아즈가 그 친척에게 말했다. "우리의 동기 엘리멜렉의 소유지가 있지 않소? 그런데 나오미가 모압 시골에서 돌아 와서 그 땅 권리를 팔려고 내놓았소. 이 소식을 당신에게 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만, 여기 앉아 있는 분들과 내 겨레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사시오. 그 땅을 도로 사서 가질 생각이 있으면 도로 사서 가지시구료. 그럴 생각이 없으면 그렇다고 말해 주시오. 내가 알아야겠소. 그것을 도로 사서 가질 사람은 당신밖에 없소. 당신 다음은 나인가 하오." "내가 도로 사서 가지겠소." 하고 그가 대답하자, 보아즈가 다짐하였다. "나오미에게서 밭을 넘겨 받는 날 당신은 고인의 아내 모압 여자 룻도 떠맡아야 하오. 그리하여 고인의 이름을 이어 그의 유산을 차지할 사람을 낳아 주어야 하오." 그러자 그 친척은 "그랬다가는 내 재산만 손해를 보게 되겠군. 그럴 수는 없소." 하면서 그 땅을 도로 사서 갖지 않겠다고 하였다. "내가 사서 가질 것이지만, 당신이나 사서 가지시구료. 나는 그럴 마음이 없소."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유산을 도로 사서 가지는 의무를 남에게 넘겨 줄 경우에는 신 한 짝을 벗어서 상대편에게 주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을 증거물로 삼고 매듭을 지었던 것이다. 그 친척도 "당신이 차지하시오." 하면서 신 한 짝을 벗어 보아즈에게 주었다. 그러자 보아즈는 장로들과 온 겨레에게 말했다. "나는 엘리멜렉과 길룐과 마흘론에게 딸렸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샀습니다. 당신들은 오늘 이 일의 증인입니다. 또 나는 마흘론의 아내 모압 여자 룻까지도 유산과 함께 아내로 얻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인의 이름을 이어 그 유산을 차지할 사람을 낳아 주어서 고인의 이름이 그의 형제들과 함께 남아 이 고장 성문 안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오늘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문께 있던 온 백성이 "우리가 증인이오." 하고 대답하자 장로들이 말했다. "야훼께서 그대 집에 들어 오는 이 여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가문을 일으킨 두 여인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한다. 그대가 에브라다에서 권세를 떨치고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휘날리기를 빌며, 또한 야훼께서 이 젊은 여인의 몸에서 후손을 일으키시어 그대의 집안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안 같이 되기를 기원한다 (룻 4:1-12)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원래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 일가의 대를 이을 가까운 친척이,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따로 있었습니다. 보아즈와 그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를 보면 그 사람도 보아즈만큼이나 재산이 있는 유력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보아즈가 밭을 사라고 하고 그 사람도 그 밭을 선뜻 사겠다고 합니다. 엘리멜렉의 유산을 수습해서 그 집안의 대를 이어줄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의 소유자였던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밭을 사겠다고 선뜻 동의했던 그 사람이 룻을 떠맡아야 하고 그 가족의 대를 이어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까 태도가 돌변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재산상의 손해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유산을 수습해서 내가 사면 자자손손 내 소유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주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그 밭은 엘리멜렉 후손의 소유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땅을 사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율법이 정한 의무보다는 자신의 재산을 더 중하게 여기고 그 가치관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이익 관점에서 판단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 당대에는 재산상의 손해를 전혀 보지 않았겠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자기 이익 때문에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어리석게도 굴러 들어온 복을 차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보아즈에게 율법이 정한 의무를 넘긴 그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재산을 하느님의 가치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그 태도 때문에 그 사람은 하느님을 따르는 의무 속에 숨어 있는 엄청난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신이나 사서 가지시구려"하며 그 귀찮고 재산상의 손해가 되는 의무이자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긴다는 뜻으로 신을 벗어주었지만 영적으로는 영광의 면류관을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든 가치가 금전으로 통합되어 버리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문화이고 문화는 우리 무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의무를 다 하기 위해서 금전상의 손해를 보는 일을 보아즈처럼 자기가 1순위 의무자도 아닌데 선뜻 나서서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의무를 포기한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당시 이스라엘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하느님 말씀으로 강하게 훈련된 의식을 가지지 못한 일반적이고 평범한 신자는 재산상의 손해를 보지 않는 선택을 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제대로 따르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문화적 무의식을 따르는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함께 해 봅니다. 재산상의 이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손해 보는 선택을 한 의로운 보아즈와 룻의 결합을 마을의 장로 열 명이 축복해 줍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말 그대로 후대에 이루어집니다. 보아즈는 룻을 떠맡고 또 그 자손을 보아서 대를 이어주었는데 그 후손에서 다윗왕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아즈는 다윗왕의 증조 할아버지가 되었고 룻은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된 것이고 하느님의 복이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그 십사대 후손에서는 하느님 약속의 완전한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손해를 감수하면서 따르고 살면 세상에서 재산상의 손해를 볼 수는 있겠지만 영적 재물이 하늘에 쌓이고 하늘에 쌓은 재물의 복은 그 후손이 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에게 영적 복의 열매를 맺어줄 어떤 고통이나 인생의 짐을 떠맡기를 거부하고 그저 그렇게 세상 문화가 주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사는 많은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그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이 하느님 뜻과 전혀 부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