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달을 가리키는 예수님의 손가락 - 윤경재 | |||
---|---|---|---|---|
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9-01-06 | 조회수670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달을 가리키는 예수님의 손가락 -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마르 6,34-44)
성경에서 오병이어의 기적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도 드뭅니다. 성경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외교인이라도 여기저기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또 이 기적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가지각색입니다. 여기에는 신자나 비신자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선은 예수님께서 과연 진짜로 그렇게 하셨을까? 라는 의심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지, 아냐 과장일 거야,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야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뛰어난 행동심리학자이셨어 등등 각자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사건 이후로 언제나 실현되었습니다. 빈자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가 인도에서 병들고 가난하여 굶어 죽어가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위해 봉사를 결심하였습니다. 우선 그들을 한 곳에 모을 장소와 당장 끼니를 해결할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그녀 수중에는 동전 몇 푼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고 실현 가능한 기적이 되었습니다. 이제 마더 테레사가 세운 빈자의 집은 세계 130여 개국에 걸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웅진 신부님께서 꽃동네를 세우게 된 계기를 준 최귀동 할아버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입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하며 다리 밑에 기거하는 병든 걸인들을 수십 년 동안 몸소 거두어 먹였습니다. 그런 일을 통해 만들어진 꽃동네가 점점 커져 이제는 미국에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지난 주 서울 대교구 주보에 났던 민들레 국수집 이야기도 또 다른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줍니다. 미처 준비한 반찬이 부족한데 많은 분이 찾아오셔서 음식이 모자랄까 걱정하면 뜻밖에도 때맞추어 누군가가 음식을 챙겨 온다고 합니다. 음식을 먹는 분들도 준비된 양이 넉넉하면 양껏 드시지만, 부족하다 싶으면 알아서 조금만 담아가던지 아니면 아예 담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두가 남을 배려하는 나눔의 정신에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은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여지없이 허물어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도 우리 간구 중 첫 번째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청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제자들은 날이 저물자 군중들이 배를 곯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군중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떠올립니다. 누구도 나눔의 새로운 체험을 하지 못했기에 그랬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새로운 체험의 물꼬를 터주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인간은 첫 물꼬를 터주면 잘 따라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 발견이 어렵지 막상 경험하고 나면 그것을 확장하고 사용하는 데 소질이 있습니다. 본문 문맥을 묵상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나무라시는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냥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이 지닌 보잘것없는 것을 내놓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 것이 전부입니다. 흔히 제자들과 의견 차이를 두고 지레 야단치신 것으로 오해하는데 공연한 상상일 뿐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께서 보여주신 기적을 표징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곱 개의 표징 중에서 가장 가운데 위치시켰습니다. 표징은 어쩌다가 일어나는 기적과 달리 우리 안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기적입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실현되는 기적입니다. 그래서 굳이 표징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해하려고 많은 시도를 하여왔습니다. 그러나 자주 머릿속 이해 차원에 머물지나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이해는 달을 가리키는 분의 손가락이 어떻게 생겼는지 따지는 수준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제는 시야를 손가락에 둘 것이 아니라 직접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 길손의 길을 밝혀주는 하늘 뜬 달을 쳐다보아야 하겠습니다. 기적을 기적으로 놔두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되지만, 우리 일로 받아들이면 하느님 나라를 나타내는 표징이 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