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훌륭한 항해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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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현아 | 작성일2009-01-08 | 조회수851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주의 공현 후 목요일 - 훌륭한 항해사
한 청년이 위대한 항해사가 되는 꿈을 안고 세계를 횡단한 유명한 한 항해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 항해사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 부었습니다. 특별히 항해를 잘 하기 위한 방법으로 바람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장님, 저에게 바람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 주십시오.” “... 바람? 잘 모르겠는데?” “아니, 위대한 선장님께서 어떻게 바람에 대해 잘 모르실 수가 있습니까? 바람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은 항해사의 기본이 아닙니까?” “글쎄, 잘 모르겠네.” 그래도 계속 다그치자 그 항해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난 바람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고 어떻게 불게 되고 어느 방향에서 불어올지 전혀 예상도 할 수가 없네.... 다만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언제 닻을 올려야 하고 언제 닻을 내려야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아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령의 이끄심에 어떻게 잘 순응하느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다시 돌아오셨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그리고 이사야서에 예언된 당신의 사명을 읽으신 다음 바로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왜 예수님께서 미리 복음 선포를 하시지 않고 나이가 서른이 되실 때까지 기다리셨을까요? 더 먼저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즉, 성령님께서 당신에게 내리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성령님이 예수님께 내렸을까요? 바로 세례를 받으실 때입니다. 세례 받으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부터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시작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위에 임하시고 참으로 ‘그리스도(그리스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 히브리어로는 ‘메시아’)’가 되신 이후에 바로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복음 바로 전에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여 사탄에게 유혹받게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루카 4,1-2) 이 유혹을 이기시고 오늘 당신의 동네로 돌아오셔서 비로소 복음전파를 시작하게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대로 돛을 올리고 내릴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즉, 때를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도 왜 40일간의 단식과 기도와 유혹을 받게 하셨을까요? 이는 성령을 받더라도 육체적 욕망에 휘둘리거나 그래서 죄를 지을 수 있는 약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의 오심도 그에게는 큰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령님은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든 우리에게 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길 줄 아는 강한 믿음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죄에 떨어지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죄에 떨어지되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는 죄짓지 않도록 더 강해지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루하루는 좋은 항해사가 되기 위한 연습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길 수 있을 만큼 노련한 행해사가 되었을 때 성령님의 충만한 열매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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