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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6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1 조회수56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

그때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께 내려 오셨다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일체를 이루는 순간입니다. 성령은 하느님과 우리를 일치시켜주는 매개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그 순간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성령을 꽉 붙잡아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세례를 받으실 때에 당신께 오신 성령을 꽉 붙잡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제게 지금 성령이 임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고 있으므로 성령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이 내려 온 것을 눈으로 봐야 성령을 꽉 붙잡을 수가 있는데 제 눈에는 하늘을 가르며 성령님이 오시는 모습이 보이지를 않으니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눈을 뜨고 있으나 성령님을 보지 못하므로 바로 제가 눈먼 장님입니다. 예수님은 저처럼 이런 눈먼 장님들을 치유해 주시며 성령님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저 같은 청맹과니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성령님을 보지 못하므로 청맹과니로 살고 있습니다. 청맹과니면 그래도 눈만 치유 받으면 되지만 하늘의 음성도 듣지 못하므로 저는 지금 귀 구멍까지도 막혀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신 이 말씀은 제가 아는 짧은 성경지식으로는 신약에서는 처음으로 듣는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구약에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예수님이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오늘 복음을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한 번 들은 사람은 매 순간 순간마다 듣고 있을 것이며 깨달은 사람만이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 깨달은 사람은 깨닫기 전의 상태로 다시 원위치를 하고 싶어도 원위치를 할 수 없습니다. 유충이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었으면 다시 유충이 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할 것이므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몸 나를 이미 버린 해탈의 상태이고 예수님은 오늘 세례를 받는 순간 몸 나를 모두 버리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하느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신 하느님의 음성처럼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며 한 순간도 살아오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이런 삶을 사신 분은 우리 신앙에서는 태초이래에 예수님이 唯一無二 하신 분입니다. 또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신 하느님의 음성은 두 가지 경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아들은 실제 외아들이며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뜻과 또 다른 의미는 내 아들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저희에게 알려주신 의미는 후자의 경우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알려 주셨으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 교인이 아닌 사람만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불교 신자들은 자신들을 부처님의 아들인 불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사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맏형님이시며 맏오라버니로 자신 있게 불려야 합니다. 탕아인 제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 뜻을 그대로 따르는 종과 같은 마음자세로 살아야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지금은 자녀 노릇을 못하고 탕아로 살고 있음으로 이를 반성하며 오늘 주님의 성체를 모시겠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아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드님으로 오늘 간택되셨습니다.
우리 모두 아빠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직도 탕아로 살고 있습니다.
이런 탕아의 생활을 빨리 청산하고 참된 자녀가 되도록
청맹과니에서 벗어나서 성령님을 영접하고
막힌 귀가 열려서 사람의 음성인 아닌 아빠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언제나 저희를 성령님의 지혜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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