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해 가능한 신비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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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9-01-11 | 조회수558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이해 가능한 신비 - 윤경재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 1,7-11)
성경을 읽다보면 과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하고 의구심이 드는 사건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그래서 복음서 저자들은 어떤 양식에 따라 놀라운 사건을 기록하려 하였습니다. 이른바 ‘기적 양식’이죠. 먼저 배경 설명이 나오고, 두 번째로 기적을 요청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말씀이나 질문을 곁들이면서 기적이 즉시 이루어집니다. 네 번째는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또 저자들이 그 사건을 지칭하는 단어도 여러 가지입니다. 놀라운 일, 기적, 놀라운 능력(뒤나메이스), 이적, 그리고 표징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오는 이유는 저자들이 수집한 자료가 시간적 차이가 있어서입니다. 신학적 묵상이 정리된 이후에는 표징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고 그 이전 단계에서는 기적 등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는 표징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심지어 바리사이나 백성들도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표징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나, 하느님의 일을 가리키는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표징이란 단어가 신학적 고찰을 통해 나온 것이라 볼 때, 우리는 다른 복음서에서 나온 기적이라는 표현도 그 단어를 표징으로 바꾸어 묵상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현대에서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확실한 설명을 할 수 없지만 분명히 변화가 일어난 일이 생깁니다. 기적은 일회성 사건일 뿐입니다. 두 번 연속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여러 번 반복해서 생깁니다. 예를 들면 성모님 발현은 세계 곳곳에서 그것도 여러 번씩 일어났으며 교회도 성모님 발현을 인정하였습니다. 신비는 믿음을 키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제대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비오 성인의 오상도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신비로 해석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 걸머지신 주님을 따르려는 주님 사랑이 이룬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인간인 요한에게 오시어 굳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전혀 그럴 까닭이 없으실 것 같지만, 그렇게 하신 이유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심입니다. 그저 너와 나가 아닌 우리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또 지극한 겸손과 순명을 몸소 보여주신 모범이기도 합니다. 신성으로 계시다가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고, 이제는 인성으로서도 죄인의 후손에게 머리를 숙이신 것입니다. 그러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태껏 아들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마음에 드는 아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런 아들이 된 것입니다. 아빠 하느님과도 더 돈독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성령을 입어 온전한 삼위일체 신비를 드러내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만나 재결합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성부와도 관계를 맺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세례는 이렇게 하느님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한 공동체가 되는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벽을 허무셨듯이 우리도 벽을 허물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례의 신비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느님께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부르심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이런 신비를 잊곤 합니다. 아니 자신도 신비를 경험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례의 신비를 되살려 하루하루 신비를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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