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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76) 그것도 적선이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3 조회수562 추천수5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24 오후 6:54:47

 
 

2004년2월24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ㅡ야고보4,1-10;마르코9,30-37ㅡ

 

     (76) 그것도 적선이야

                              이순의

                 

ㅡ갈등ㅡ

매일 하루에 한두 번씩은 들려봐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옆방 새댁 집에 오늘도 어김없이 문을 두드렸다. 늦잠이 들었는지 부스스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눈을 비비면서 문을 열어준다. 이른 방문인가 싶어 미안한 마음에 그냥 나오려했더니 일어날 거라고 들어오라고 한다. 조무래기들도 아직 취침중인지 드물게 고요하다.


그런데 현관 바로 앞에 푸대접 받는 상자가 쌓여있다. 바로 어제 새댁이 사서 배달된 냄비세트다.

"언니 반품하려구요. 애들 아빠가 사지말래요. 이 냄비로 해주는 음식은 먹지도 않겠데요."

너무 좋아서 방방 떠 있던 어제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늘 그러 했듯이 우리는 서로 친구인 관계로 허심탄회한 대화가 시작 되었다.

 

청소를 열심히 하느라고 열어둔 우리 집 창문으로 확성기를 대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3월부터는 음식물의 물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겠사오니 오늘 3시에 나오셔서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타가지 않으신 분은 오늘이 마지막이오니 꼭 나오셔서 음식물 건조기를 타가시기 바랍니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옆 건물 아주머니도 베란다에 서서 구청에서 나왔느냐고 여쭈시며 음식물 쓰레기수거를 거절당할까봐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계셨다.

 

하던 청소를 멈추고 골목에 나가보니 여자들만 웅성거릴 뿐 아직 차가 도착하지 않아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바쁜 일손을 멈출 수가 없어서 건너편집 새댁에게 우리 것도 좀 받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새댁을 계단에서 만났다.

"##엄마야 음식물 건조기 받아가라고 하는데 내가 지금 바쁘니까 아이들 자면 가서 너네거랑 우리거랑 좀 받아올래?

물건 파는 사람들이면 그냥 오고 구청에서 나왔으면 받아 오거라."

 

청소가 끝나고 설거지도 끝나고 빨래를 비비려고 하는데 열려진 현관문으로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렸다. 애 어멈이 오고도 남았을 시간이라 대수롭지 않게 일을 하려는데 잘 울지 않는 큰아이 울음소리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허둥지둥 가보았더니 바지에 똥 싸고 눈물에 콧물에 엄마 없는 무서움까지! 거기다 오빠 울음소리에 잠이 깬 강보의 아기까지 울음 바다였다.


화장실로 가서 바지 벗기고 똥 털어서 변기에 넣고 씻기고 나와서 옷 입히고 그림 그리라고 타이르고, 누워서 우는 아기 안아서 얼리고 정신이 없다가, 그래도 만져 주고 안아주는 거 알아 가지구선 눈 마주치며 옹알옹알 옹알이 하자고 꼬시는 통에 홀랑 넘어가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옹알옹알 옹알이하고 금새커서 뻥긋뻥긋 웃어주는 그 답례에 녹아버렸다.

 

얼마나 놀고 있었을까 새댁이 어떤 아저씨랑 들어오더니 거실에 커다란 상자 더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저씨는 은행계좌번호를 남겨주고 가시고 새댁은 전화기로 가서 송금을 시작 했다.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것 같아서 송금을 중지시키고 전화를 서둘러서 끊게 했다. 너무 비싸다고도 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해 보아도 그들의 언변에 확실하게 세뇌된 새댁은 내 의도를 잘 알아듣지 못 했다. 분명히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면 그냥 오라고 했는데 그 말은 싹 까먹고 중금속이 어떻고 특수코팅이 어떻고 박람회에 가면 얼마인데 지금은 얼마에 팔고....... 받고 온 교육내용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이 어린 새댁의 순진무구한 가슴에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아서 직설을 뱉어주지 못하고 말을 뱅뱅 돌리고 있는데 상술이 능했을 그 아저씨가 전화를 해서 독촉을 했다. 전화송금으로 완불 되는걸 보면서 더 이상 왈가왈부하기보다는 기왕에 샀으니 잘 쓰라하고 아이들을 돌려주고 돌아왔다. 그런데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한 밤을 자고 났더니 반품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께서 거리의 장사치들에게 샀다고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에 아래층 반지하방에 살던 언니가 이혼을 하고 아이를 혼자서 키우며 어렵게 사는데 오늘 그 언니의 물건을 사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냄비 팔아서 사주던 가 그렇지 않으면 어림없다고 하신 것이다. 딱하게 되었다. 불쌍한 아래층언니도 도와주기로 해서 오늘 오신다는데 신랑한테 혼나고 그만 울상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세상을 하루라도 더 살은 이 언니의 훈계가 부스스한 아침부터 듣고 싶은 요량이다.

 

<##엄마야. 그냥 써라. 그 언니 오시면 두 달만 미뤄서 여름 상품이니까 여름에 사 주겠다 하고 냄비는 그냥 써라. 내가 어제 돈 송금을 못 하게 할 때 좀 더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 좋은 마음으로 써라. 돈을 지불 안했으면 반품하라고 하겠는데 이미 완불 된걸 반품하려고 하면 시끄러워질 뿐만 아니라 뜨내기 장사치들이라 네 마음고생이 먼저라야 돈도 돌려받지 싶다.

내가 볼 때 물건이 나쁜 건 아니고 사기꾼도 아니고 속임수도 아니고 정당한 물품을 가져와서 좀 비싸게 팔은 건데 그 사람들도 벌어먹고 살려고 나와서 너 같은 사람도 만나야지 살 것 아니냐?!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함부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허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봐서 먹어서 소용없거나 해로울 거 같으면 바꾸라고 하겠는데 냄비는 물품이라서 아무런 해가 없고 속임수도 아니니까 적선했다고 치고 그냥 써라.

 

혹시 어제 일진에 액땜했는지 아니? 손해가 나려면 너희 차 있으니까 작은 접촉사고만 나도 그 돈만 나가겠냐? 그러니까 액땜이라고 치고 냄비는 좀 비쌀 뿐이지 두고두고 쓰는 물건이니까 돈어치는 봉 빼고도 남것다. 옛날에 우리가 섬에 살을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가끔 들려서 신수점을 보시겠단다. 우리는 하느님 믿으니까 그런 거 안 본다고 해도 신수점은 미신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무턱대고 들어와 몇 마디 거들고 가시는데 나는 그럴 때도 절대로 그 노인들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서울이야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섬이라는 데는 문도 없고 도둑도 없으니 아무나 들어오면 거절을 못해. 그러다가 쉰 소리 찍찍 듣고 마는데 그 점괘가 맞아서가 아니고, 노인들이 용돈이 필요해서 돌아 다닌다는걸 아는데, 그냥 가면 나가면서 우리 집 마당에 침 뱉고 나갈까봐 드리는 거야. 고맙다 하고 나가야지 재수 없다고 침 뱉고 나서면 그것도 독성이 될까봐 몇 천원이라도 쥐어줘서 가시게 하는 거야. 그게 뜨내기 그 노인들의 삶의 방법이고 그런 눈먼 돈이라도 몇 마디 해주고 벌어가야 집 나선 보람도 있지 않겠냐?

 

네가 그 냄비 사 주고 우리골목 사람들이 그 음식물쓰레기 건조 바구니 하나씩 다 받아갔으면 그 사람들이 우리 골목에 대고 재수 없다고 안하고 재수 좋았다고 갔을 거야. 그러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못 써서 썩는 물건 아니고 필요해서 샀으면 그냥 써라. 네가 그걸 교환 하려면 상당히 마음고생을 하게 될 거야. 생각해 봐라. 골목에서 매일 보는 상점들도 사간물건 바꾸러 가면 싫어하는데 뜨내기들이 네 물건 찾으러 다시 올 때는 상당히 절차가 복잡해 질것 아니냐. 그러니까 마음고생 하지 말고 좀 비싼 적선 했다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그때서야 새댁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 했다.

거기다 한마디를 더 곁들여 주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좀 손해가 나고도 허허 웃으며 살줄 알아야해."

 

ㅡ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르코9,35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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