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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찍고, 찍고, 또 찍고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4 조회수683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찍고, 찍고, 또 찍고
                                            이순의
 
 
 
 
 
유행가 가사에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며칠 동안 대한민국의 서쪽과 북쪽을 누비(?)고 다닌 독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콧구멍이 전쟁터가 되었고
어깻죽지는 군장을 맨 것처럼 천근에다가
몸은 총 맞은 것처럼 처지고야 말았습니다.
 
 
 
 
이곳은 전라북도 어디 휴게소입니다.
전 날에 내린 눈으로 산천은 희었지만
휴게소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잡기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굳이 얻어 담은 풍경하나 고드름!
마른강추위가 연속인 서울에서는
마음먹고 찾아 나서야만 볼 수 있는 고드름!
그거라도 반가웠습니다.
 
 
 
 
친정엄마의 회갑과 칠순이라는 강압에 부르신 엄명을 제외하고는
내 스스로 엄마의 생신에 가기로 마음먹은 지가
시집 와서 처음이었습니다.
왜 친정엄마의 생신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는지
깊은 생각들을 돌아보았습니다.
1, 너무 가난했다.
2, 두루두루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3, <이것은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시집을 온 후로 처음
자발적으로 엄마 생신을 지향으로 한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에 꾸며주고 온 손자들의 유리창을 정리하고
기차는 좀 더 길게 만들어 주고
신랑각시는 한 쪽으로 밀어 모시고
마침 성가정축일에 근접하여
한지를 사다가 한나절동안 오리고 붙여서
성가족을 모셔 드렸습니다.
친정엄마를 위한 선물이라기보다는
손자들을 위한 선물이었지요.
 
 
 
 
 
 
광주 찍고 목포에 왔더니 배 타는 곳이 바뀌었습니다.
목포 여객터미널이 아니고
압해도 송곡리 여객터미널입니다.
봄에만 해도 목포 여객터미널에서 1시간 30분 동안 배를 타고 갔던 섬 집에
압해도 송곡리에서 30분만 배를 타면 섬 집에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1994년 여름에 섬으로 이사를 갈 적에는 3시간 30분 동안 배를 타고 가느라고
배 멀미에 고생이 말이 아니었는데
1시간 반만 타는 뱃길도 은총처럼 신기 했었는데
겨우 30분만 배를 타다니!
한 편으로는 섭섭도 하였습니다.
뱃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풍경과 멋과 낭만들을
다 빼앗겨버린 느낌!
배에 올랐더니
금시 내리라고 합니다.
거~ 참!
 
 
 
 
목포 찍고
섬 집에를 가면 할 일이 많습니다.
꼬신 참기름도 짜 와야 하고
담가 놓은 간장 된장도 퍼 와야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검은 콩은 뒷집 아짐이 주셨고
갯바람에 고소한 냄새 폴폴 나는 섬 쌀은 철공소 형님이 주셨고
고사리랑은 원두 형님이 주셨고
.
.
.
뭔 짐이 그렇게 많든지요!
한 가지 섭섭한 것은
누군가 우리 된장을 반이나 퍼가 버렸드라구요.
된장만 퍼 갔어야 되는데
유리 뚜껑 덮어놓은 항아리 옆에 모셔 둔
항아리 뚜껑 두 개도 가져가 부렀드랑께요.
마을 어른들은 항아리마다 된장간장이 가득가득이라서 손댈 일은 없구유
아마도 뱃길로 들어와 고물이랑 이것저것 사고파는 장사치들이
먼지 수북한 마루를 보고
빈 집이라고 한 번 둘러보고 갔을 것입니다.
속상했어도 어쩌것습니까?!
제가 집을 머리에 이고 다닐 수도 없고.......
 
 
 
 
인덕성당 구영공동체의 희망!
제대 한 쪽으로
섬마을의 아기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우셨드라구요.
이제는 도시에서도 아이들은 천연 기념물이지요.
그렇지만 섬마을의 아이들은 천연기념물보다 더한 보물이지요.
제가 구유를 찍는데
살짝 옆으로 와서
저렇게 귀여운 포즈를 취하시고는
셔터 소리가 찰칵 나니까 슬쩍 빠지는 센스까지!
제가 섬에 살을 때는
저 어린친구 아빠는 총각이었거덩요.
두 아이 아빠가 되셔서
유아실 없는 섬마을 성당에서
자는 아기 안고 미사 중인 모습은
박물관에 진열 해 두고 새겨 보아야 할 멋진! 
저 귀여운 녀석이 큰아이랍니다.
제가 섬에 가서 볼 때마다 드리는 지향이기도 하지요.
<주님, 저 성가정이 주님께서 갈라놓으실 때까지 거룩하게 보호 받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아멘>
아이들 데리고 미사에 온 모습을 보면
그저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압해면 송곡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 왔다면
나갈 때는 암태면 오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합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서울에 오려면 첫배를 타야 안심이지요.
그런데요.
서쪽에 있는 섬이 동쪽 육지에서 올라 온 해를 맞이하시더라구요.
새 선착장을 찾아오는 길이 초행길이라서 너무 일찍 나온 탓에
바다는 어두컴컴했었지요.
그런데 떠오르는 서해 바다의 일출을 보게 될 줄이야.
여객선이 들어오기 직전에 엄청나게 큰 화물선이 저 바다를 비켜 갔거든요.
그 뒤로 해님이 두~우~ㅇ실!
맨 날 서해의 일몰만 보았었는데
첫배를 타러 나왔더니 서해 바다에서도 이런 일출을 보게 되는 군요.
 
 
 
 
 
 
 
서울 찍고, 광주 찍고, 목포 찍고,
압해도에서 배를 타고 암태도에서 내려 자은도 까지 찍고,
다시 암태도에서 배를 타고 압해도에 내려
바닷길을 30분으로 단축 해 버린 압해 대교입니다.
저 다리 덕택에 뱃길이 30분으로 단축되어버린!
또 좋은 소식!
압해도와 암태도를 잊는 새천년대교 국책사업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6년이나 10년쯤 후에는 
자은도의 저희 섬 집까지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다리들이 주는 역사적인 변화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1994년에 섬에 갔을 때 60세 되신 분들이 지금 75세 이고 보면
그 위의 어르신들은 거의가 고인이 되셨고
젊은 유동 인구는 없는데
흙으로 돌아가야 할 날들이 가까운 어른들로 구성 된 신앙공동체는
15년 전에 제가 거기서 살을 때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
섬 네 개에 7개 공소를 합하여 본당을 만들고
그 본당에 상주하시는 신부님의 어려움이란....... 
뜻이 있으신 분들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광주대교구 인덕성당입니다.
사제관 전화는 061) 271-8383. 010-8610-7513입니다.
일곱 개 공동체가 모두 각기 다른 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구영 공동체에 신부님께서 계십니다.
헉?
압해대교를 자랑해야 하는데.......
쩝!
압해대교를 나와 목포시 옥암동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옥암동 성당 바로 옆 아파트에 친구가 살더라구요.
남편께서 얼마 전에 목포로 발령이 나셨거등요.
서울서 만날 때 보다 더 반갑더라구요.
점심을 먹고 가라고, 먹고 가라고, 먹고 가라고 야단이었지만
<눈에 종양 수술을 한 후로 밤이 무서워서 가야해. 해 있을 때 서울 도착하지 않으려면 여기서 자고 가야 하는데 내일 바로 강원도까지 가야 하거덩.>
서해안 고속도로로 직진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는 내 고향 휴게소가 있습니다.
고향에 갈 일이 많지 않아도
함평천지 안내판만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드라구요.
그래 내 고향 휴게소에서 모카커피 한 잔 사서 마셨습니다.
그곳이 내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던 길을 멈추었지요.
내 고향 함평천지!
 
 
 
 
 
 
 
 
 
서울 와서 잠만 자고,
아니지요. 서울 찍고.
아니 아니 성당에 가서 평일 오전 미사도 했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평창 집으로 가서 자고
목적이 있었던 일을 하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만나고,
저 사진은요
표지판에 해발 900미터 라고 써져 있습니다.
진고개 정상을 넘어 강릉, 소금강, 주문진 방향으로 내려가는 중인데요. 
아~! 춥데~! 
평창 찍고, 강릉입니까?
 
 
 
 
 
 
얼음이 무지하게 얼었습니다.
사실은 평창 집 앞에 개울도 엄청 얼었던데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추워서 끔쩍을 하기가 싫었거덩요.
막상 사진 작업을 해서 여러 벗님들께 보여 드리려고 하니
멋진 얼음 사진이 한 장도 없네요.
손 시리고,
볼테기 시럽고,
몸뎅이는 오그라지고,
멋진 사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기 강릉 동해 바다입니다.
엄청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오던데
저기 저 사람은 저기서 낚시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저녁 뉴스에 강릉 방파제에서 파도를 구경하던 일가족이
저런 파도에 밀려서........
그 뉴스 보면서 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손님께서.
아니 저희가 손님으로 강릉을 갔습니다.
가자미회와 오징어 회를 대접 받아서
진짜 맛나게 초장에 찍어 먹고, 비벼 먹고 .
초대해 주신 분의 차 속에서 지나가면서 오죽헌도 스쳐보고,
정동진은 구경은 못하고 저쪽이 정동진이라는 하늘만 처다 보고.......
ㅎㅎ ㅋㅋ
 
 
 
 
 
 
밤에 집에 왔더니  섣달 보름이 지나 쬐끔 찌그러진 달이 휘영청 밝더라구요.
달을 찍고 사진을 보니.......
진짜루 붉은 십자가 많네요.
여러 날 동안 찍고, 찍고, 또 찍고 다니느라고
본 것도 많았고,
겪은 것도 많았고
느낀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 중에 기억에 되새기고 싶은 순간은.......
 
 
 
 
 
 
 
 
인덕성당 대율 공동체에서 평일 저녁미사가 있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저희 집 동네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돌아오는데
차 속에서 말이 났습니다.
<우리 성당 수리 중이여. 신부님이 오셔서 수리 허라고 해서 허는디 그 돈은 어디서 나서 허는가 모르것어. 우리 성당은 일곱개 성당 중에서 질로 작어서 안신부님 가신 뒤로는 주일 미사는 없고 평일 미사만 한 번 있제. 그래서 그나마 공동체에서 쓸 주일 헌금도 없어져 부렀당께. 그런디 지난번에 잠깐 오셋다가 갈리신 신부님이 주일미사를 없앤 뒤로 새로 오신 신부님도 주일미사를 없이 평일미사만 허든디 돈이 어디서 나서 수리를 헝가 모르것어. 안타까와 죽것어도 우리들이사 수리허먼 좋제.>
그래서 마을 어귀에서 어른들을 내려 드리고 수리중이라서 불이 켜진 성당에를 가 보았습니다.
작은 성당 보다 더 컸던 제대는 없어지고 작고 아담하게 새 제대를 짰더라구요.
아마도 제 생각이지만 그렇게 큰 제대는 어데 큰 성당에서 쓰던 걸 가져다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낡아서 합판이 뜯어지고 너덜너덜하고.......
간혹 돌아다니다 보면 작은 부지의 작은 공소들을 팔아버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저는 그걸 아주 못마땅해 합니다. 작지만 그 부지를 마련할 때의 공동체를 생각해 보면 풀이 무성한 공소 터라도 열정이 느껴지거든요. 그 풀이 무성한 공소 터가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유지해 내려오지 못한 열정들이 고스란히 배겨 있는데 팔아버리면 안되지요. 그 열정들이 너무 아깝거든요.
그런데 몇 명도 참례하지 않는 공소였던 본당 공동체를 팔아 없애는 게 아니라 수리를 해 주시다니! 그것도 아주 젊은 신부님께서.......
수리 중인 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미사를 마친 신부님께서도 사제관이 있는 공동체로 돌아가시는 길에 들리셨더라구요. 저는 나오고 신부님은 들어가시는 길목에서.......
<신부님, 저는 잠실에서 온 신자입니다. 15년 전에 여기 와서 살았는데요. 오늘 미사 내내 생각해 보았거든요. 신부님께서 참으로 마음고생이 되시겠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그래도 신부님께서는 일정 기간 까지만 이곳에 사실거잖아요?! 하지만 이곳 교우들은 섬마을의 농촌이라는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나서도 이곳에 묻히실거거덩요. 그러니까 신부님께서 하루를 사시더라도 기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이대로 받아들이시고 기쁘게 기쁘게 사시길 바랍니다. 신부님.>
어둠 속이지만 신부님의 표정은 단호했고, 갯바람에 수단자락을 펄럭이며 수리 중인 성당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연주곡 : 고향의 봄 -
음악이야기 서상철님 것 얻어 왔습니다.

              고향의 봄 (하모니카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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