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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15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5 조회수904 추천수14 반대(0) 신고
 
   
 

1월 15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마르코 1,40-45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릴 때부터 피부가 몹시 약했던 저는 여러 가지 피부병으로 인해 엄청 고생을 해봐서 피부병이 얼마나 괴로운 병인지 잘 알고 있지요. 또 피부병 환자들이 겪는 말 못할 괴로움도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질환이 되었는데, ‘옴’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직도 단체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심심치 않게 발병해서 사람들을 괴롭히곤 하지요.


    저희 집은 아직도 이 옴 때문에 가끔씩 비상이 걸립니다. 옴은 옴진드기가 피부에 기생함으로써 발생되는 질환으로 개선이라고도 합니다. 옴진드기는 각질층 내에 터널을 뚫고 살게 되는 데, 그로 인한 가려움증이 유발됩니다. 증상이 진행되면 정말 참기가 어렵습니다. 전염성은 또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신체 여러 부위가운데 가장 후미진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손가락이나 발가락 사이에 많이 생기는 데, 한번 긁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함부로 ‘박박’ 긁다보면 증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 나중에는 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번지기도 하지요.


   언젠가 제가 옴 비슷한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지독한 가려움증을 이기지 못해 자는 동안 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엄청 긁어버려서, 그 다음날은 손을 침대에 묶고 잔 기억도 납니다. 너무나 간지러워서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피부병 중에 별것도 아닌 옴이 이렇게 지독한데, 나병은 얼마나 사람을 괴롭혔겠습니까? 나병은 옴과는 차원이 다른 병이었습니다. 옴이야 어느 정도 고생하고 나면, 꾸준히 치료를 하면 원상복귀 된다는 희망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나병은 특효약이 전혀 없던 불치병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약한 것은 나병에 걸리면 끔찍하게도 매일 오그라드는 자신의 몰골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매일 손가락 마디가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현실, 매일 조금씩 코와 눈썹이, 입술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현실을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습니다. 지옥 같은 나날이었겠지요.


   유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 전염병이나 악성 피부병은 격리가 최상의 방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병 혹은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입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나타나면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만 했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성 밖으로 나가 살아야만 했습니다. 나병환자 표시가 나도록 누더기를 입고 머리도 깎지 말아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나병환자들은 인간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배척된 사람들이었고,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짐승처럼 산기슭에서 토굴을 파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환자는 그가 하는 언행을 봤을 때 꽤 중증의 환자로 여겨집니다. 자신이 앓고 있던 나병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던지 율법조차 어겨가며 예수님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원래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로 들어올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까지 들어왔습니다.


   그의 태도를 한번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간절합니다. 예수님임을 알아차린 그는 털썩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나병으로 인해 서러웠던 지난 세월이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입니다. 나병에 걸린 이후 인간사회로부터 추방당하고, 산짐승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찌 내게 이런 일을 허락 하시는가’며 매일 울분을 토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혹시나’ 하고 자신의 손과 발을 만져보는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밤사이에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나병이 낫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였기에 이제 마지막 희망을 안고, 무례가 되는 줄 분명히 알면서도, 율법을 어겨가면서 예수님께로 달려온 것입니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외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장에서,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간절히 부르짖는 나병환자의 외침 앞에 마침내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권능의 손을 그에게 펼치십니다. 자비의 팔을 그의 어깨에 두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환자의 새 삶을 한번 살아보겠다는 간절한 마음,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메시아임을 굳게 믿는 확고한 신앙이 결국 기적을 불러옵니다.


   오늘 저 역시 치유 받은 나병환자처럼 주님의 도움으로 다시 한 번 깨끗해지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보란 듯이 새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480번 /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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