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백 루미네 수녀님이 생각난다. 6·25전쟁 후 우리나라에 와서 농사도 짓고 땀 흘려 일하시느라 거칠어진 손이 말씀보다 더 많은 말을 했던 수녀님, 가난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살며 엄마 노릇을 하던 푸른 눈의 수녀님을 만날 때면 ‘무엇이 이분으로 하여금 익숙한 땅을 떠나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며 가난한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느님의 존재를 가슴으로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올해 네 분의 수녀님이 에콰도르로 파견받아 떠났다. 적도의 나라, 우리나라의 중복과 비슷한 날씨에 먹는 물, 씻는 물 한 방울이 귀하고 수술 중에도 정전이 되는 나라, 미사 시간에 성당 중앙에 개가 돌아다니고 새들이 유유히 날아다니는 가운데 신자들이 뜨겁게 박수치며 축제처럼 즐기는 나라. 가난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며 에콰도르 사람으로 강생하길 바라는 수녀님들이 스페인어 단어 하나하나를 배우며 어린 아기가 된 느낌이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수녀님들이 파견될 때 어떤 수녀님이 “우리 모두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다. 수녀님들이 떠나면서 남은 분들이 일을 더 나누어 맡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수도회가 다 함께 가는 거라고…. 수녀님들이 우리를 가슴에 품고 에콰도르로 가시듯 우리도 수녀님들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사도직을 열심히 하는 것이란 마음이 들었다.
주님의 손길이 닿아 구원되고 자유로워지는 기쁨을 누린 나병환자가 공동체에 통합되어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시는 님의 마음과, 당신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시는 사랑이 오늘 새롭게 다가온다.
조정희 수녀(사랑의 씨튼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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