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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7 조회수890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Those who are well do not need a physician, but the sick do.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Mt.2.17)
 
 
제1독서 히브리 4,12-16
복음 마르 2,13-17
 
 
“말과 글도 삶이 한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새로운 삶이 전제됨이 없이는 새로운 말과 글이 나올 수 없다. 비슷비슷한 되풀이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선감이 없는 말과 글은 그의 삶에 중심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글은 법정 스님의 글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사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습관적으로 하는 말과 글을 제 자신이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너무나 많은 글을 썼지만, 이것들 중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남을 말과 글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러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직접 글로 남긴 것은 하나도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니까요.

이렇게 살아 있는 말씀을 하실 수 있음은 단순히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당신께서 직접 보여주셨던 사랑의 삶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지금까지도 새로운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당시의 소외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리와 죄인들과 예수님께서는 음식을 잡수십니다. 죄인과 함께 있는 것 자체로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풍속을 보았을 때, 예수님의 이 행동은 정말로 파격적인 것이었지요. 솔직히 예수님께서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오히려 당신에게 커다란 스캔들을 가져올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누시고 음식과 함께 하십니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사랑에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똑같은 사랑으로 다가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멋진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시지요.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해서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되어 우리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내 자신의 구태의연한 삶을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타협의 말들도 벗어버려야 합니다. 대신 내 자신을 또다시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통해 새롭게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며, 나의 말과 글에도 커다란 힘이 담기게 됩니다.



사람은 과거의 원한과 시름만 갖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벤자민 프랭클린)




내 탓과 네 탓(작자 미상)

가톨릭의 고백송에는 '네 탓'이 없습니다
오직 '내 탓'뿐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불가에서도 모든 것이 제 마음 탓이라 가르칩니다

'내 탓' 과 '네 탓'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별자리들 사이만큼이나 서로 멉니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내 탓과 네 탓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네 탓'은 물론이고 '내 탓'도 모두 '네 탓'이 됩니다

내 책임은 항상 그럴 듯한 핑계 속에 숨어 버리고
언제나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길게 남습니다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내가 잘못 했습니다" 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신뢰와 존경을 받을만한 인격자입니다

여는 야의 탓을, 야는 여의 탓을,
정치인은 언론 탓, 언론은 정치 탓,
사장은 사원 탓, 근로자는 사용자 탓,
어른들은 젊은이 탓, 젊은 세대는 늙은 세대 탓,

잘못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너도나도 과거를 부라리며
과거 탓, 현재 탓을 하느라
나라의 역사를 온통 우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 탓과 네 탓
글자 한 획이 무책임과 책임을,
거짓과 진실을,

비양심과 양심으로 나타나니
글자 한 획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다르고 삶이 다른 것입니다

내 탓은 내 탓이요, 네 탓은 네 탓입니다
네 탓 속에서도 내 탓을 발견할 줄 아는 인격,
아름다운 마음, 올곧은 양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넘치는 '네 탓' 속에 '내 탓'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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