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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육(靈肉)의 수련" - 1.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8 조회수656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18 연중 제2주일(일치 주간) 
                                                        
사무 상3,3ㄴ-10.19 1코린6,13ㄷ-15ㄱ.17-20 요한1,35-42

                                                      
 
 
 
"영육(靈肉)의 수련"
 
 


직장생활을 하는 어느 형제님과의 대화 중
아낌없이 격려해드렸던 일이 생각납니다.
 
다음과 같이 아침 시간의 활용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요즘 일이 있어 아침미사를 참석해 보니 너무 좋습니다.
  종전까지 해오던 아침운동을 계속해야 하느냐
  미사를 해야 하는가 갈등하던 중 결정했습니다.
  아침에는 꼭 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운동은 저녁시간에 하겠습니다.”

형제님의 결정이 너무 바람직하여
저도 기분이 좋아 즉시 화답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하루의 영적 이정표와도 같은 미사로 하루를 시작하면
  삶의 질서도 잡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될 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영혼의 수련에
매일 아침미사나 혹은 말씀 묵상과 기도보다
더 좋은 수련도 없을 것입니다.
 
어찌 영혼만의 수련이겠습니까?
 
영혼과 육신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재입니다.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영혼 수련과 더불어 저절로 육신의 수련이요,
영혼 건강과 더불어 육신의 건강입니다.
 
영혼 수련 없는 육신 수련,
영혼 건강 없는 육신 건강은 위태롭기가 모래 위의 집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장 중요한 게 몸입니다.
몸 없으면 기도도 못하고 사랑도 못합니다.
 
이 몸을 위해 영혼 수련을 적극 권장합니다.
영혼 수련과 함께 가는 육신의 수련입니다.
 
우리 모두 영육의 수련자들이요 주님은 수련장이십니다.

오늘 2독서에 바오로 사도의 몸에 대한 말씀에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래서 몸과 마음 하나 되어 기도 바치고 미사 드리는 것이
그리도 중요합니다.
 
바오로의 코린토 교회 신자들을 향한 말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자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의 성전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불륜을 멀리해야 합니다.
  성전인 몸과 더불어 영혼까지 더럽히는 불륜입니다."
 
영육의 수련인 미사의 예배와 기도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한량없는 축복입니다.
 
영육의 정화와 치유요 성화입니다.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스승은 물론 제자직의 우선적 조건이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사무엘의 스승 엘리,
두 제자의 스승 요한 세례자 진정 무욕의 깨끗한 마음의 사람들입니다.
 
청출어람
(靑出於藍: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진이 스승이나 선배보다 더 뛰어남을 뜻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질투 많은 스승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엘리와 요한 세례자,
제자나 주님께 대한 질투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내공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무엘에
질투하는 마음 하나 없이 잘 응답할 수 있도록
자상히 가르쳐 주는 엘리입니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요한 세례자 역시 제자를 잃을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보는 순간 고백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 말을 듣자마자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스승 예수님을 따라 바람같이 떠나는 제자들에 대해
전혀 집착함이나 또 예수님께 대해 전혀 질투심이 없어 보이는
요한 세례자 정말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스승들
유일한 참 스승이신 주님께 안내하는 가이드에 불과할 뿐입니다.
 
주님인 참 스승께 잘 인도하는 자가 진정 겸손한 세상의 스승들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 있을 때 깨어있는 정신에
무욕의 깨끗한 마음입니다.

활짝 열리는 마음의 눈, 마음의 귀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마음의 눈은 얼마나 밝은지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세례자만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아봤습니다.
또 요한의 두 제자가 자기를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 내면의 갈망을 꿰뚫어 보신 주님의 물음입니다.

“무엇을 찾느냐(What are you looking for)?”

과연 이렇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이어 전개되는 주님과의 문답이 절실하기가 마치 선문답을 연상케 합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Rabbi, where are you staying)?”

두 제자의 단도직입적 질문이자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주님과 함께 주님의 삶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와서 보아라(Come, and you will see).”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듣고 배우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월등한 효과입니다.
 
주님과 함께 묵고 난 다음 날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시몬 형을 만나 고백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설명이 아닌 주님과 함께 묵으면서 메시아를 체험한 두 제자입니다.
또 시몬을 눈여겨보며 그의 진가를 확인해주는 주님이십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참 눈 밝은 스승 세례자 요한이요 예수님이십니다.
 
엘리의 수련자이며 미구에 훌륭한 예언자가 될 사무엘의 귀는
또 얼마나 밝은지요?
 
한 밤 중 잠들어 있어도 깨어있는 영혼이라
주님의 부르심을 들을 때 마다
스승님의 부르심으로 착각했습니다만 즉시 응답합니다.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응답인지요.
주님께서 부르실 때마다 즉시
‘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이런 자세로 미사에 성무일도 기도에 참석한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의 것이자 성령의 성전입니다.
그러니 이 몸으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미사와 기도와 말씀공부를 통해
영혼과 육신의 수련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깨끗한 마음의 축복입니다.
 
마음의 눈이, 마음의 귀가 열려 영적현실을 직시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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