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의 수련인 미사의 예배와 기도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한량없는 축복입니다.
영육의 정화와 치유요 성화입니다.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스승은 물론 제자직의 우선적 조건이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사무엘의 스승 엘리,
두 제자의 스승 요한 세례자 진정 무욕의 깨끗한 마음의 사람들입니다.
청출어람
(靑出於藍: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진이 스승이나 선배보다 더 뛰어남을 뜻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질투 많은 스승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엘리와 요한 세례자,
제자나 주님께 대한 질투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내공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무엘에
질투하는 마음 하나 없이 잘 응답할 수 있도록
자상히 가르쳐 주는 엘리입니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요한 세례자 역시 제자를 잃을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보는 순간 고백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 말을 듣자마자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스승 예수님을 따라 바람같이 떠나는 제자들에 대해
전혀 집착함이나 또 예수님께 대해 전혀 질투심이 없어 보이는
요한 세례자 정말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스승들
유일한 참 스승이신 주님께 안내하는 가이드에 불과할 뿐입니다.
주님인 참 스승께 잘 인도하는 자가 진정 겸손한 세상의 스승들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 있을 때 깨어있는 정신에
무욕의 깨끗한 마음입니다.
활짝 열리는 마음의 눈, 마음의 귀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마음의 눈은 얼마나 밝은지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세례자만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아봤습니다.
또 요한의 두 제자가 자기를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 내면의 갈망을 꿰뚫어 보신 주님의 물음입니다.
“무엇을 찾느냐(What are you looking for)?”
과연 이렇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이어 전개되는 주님과의 문답이 절실하기가 마치 선문답을 연상케 합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Rabbi, where are you staying)?”
두 제자의 단도직입적 질문이자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주님과 함께 주님의 삶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와서 보아라(Come, and you will see).”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듣고 배우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월등한 효과입니다.
주님과 함께 묵고 난 다음 날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시몬 형을 만나 고백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설명이 아닌 주님과 함께 묵으면서 메시아를 체험한 두 제자입니다.
또 시몬을 눈여겨보며 그의 진가를 확인해주는 주님이십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참 눈 밝은 스승 세례자 요한이요 예수님이십니다.
엘리의 수련자이며 미구에 훌륭한 예언자가 될 사무엘의 귀는
또 얼마나 밝은지요?
한 밤 중 잠들어 있어도 깨어있는 영혼이라
주님의 부르심을 들을 때 마다
스승님의 부르심으로 착각했습니다만 즉시 응답합니다.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응답인지요.
주님께서 부르실 때마다 즉시
‘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이런 자세로 미사에 성무일도 기도에 참석한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의 것이자 성령의 성전입니다.
그러니 이 몸으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미사와 기도와 말씀공부를 통해
영혼과 육신의 수련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깨끗한 마음의 축복입니다.
마음의 눈이, 마음의 귀가 열려 영적현실을 직시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실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