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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19."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19 조회수1,701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7, 31-35(연중 24주 수)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루카 7, 31)

 

마치 예수님의 심장을 할퀴고 터져 나오는듯한 이 탄성에는 안타까움을 너머 비탄과 자조감마저 서려 있습니다. 그 호소가 너무나 간절한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 7, 31)

 

이 비유의 뜻은 명료합니다. 곧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는, 요한의 회개에 대한 호소에도 가슴을 치지 않고,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쁨에도 춤추지 않는 세대를 말합니다. 곧 이 세대는 자기 죄악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도 없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기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는 원인이 예수님의 메시아적인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그들의 완악함과 악의 때문임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무관심과 완고함의 심각함을 말해줍니다.

완고함이란 마치, 엎어져 있는 항아리를 보고 입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그 엎어져 있는 항아리를 들추어보고 바닥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완고함의 뿌리에는 비뚤어지진 마음과 악의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이 이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요한의 외침을 듣고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귀신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을 뵙고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먹보요, 술꾼이요, 죄인들의 친구라고 악의에 차 조롱하였습니다. 결국, 완고함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공격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예수님의 사랑은 이미 아픔입니다. 사랑은 거부, 배척이라는 가시에 찔려, 흘러내리는 눈물이 됩니다. 사실, 내가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을 때, 바로 그러했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거부할 때, 그렇게 당신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비뚤어진 왜곡된 마음과 악의가 아니라, 호의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라는 간절한 요청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예수님과 계시에 대한 간절한 요청을 받습니다.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치는 일입니다. 그러면 바로 지금이 말씀을 영접하는 순간이요, 바로 오늘이 임을 만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임과 더불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이 비뚤어진 마음이 아니라, 반겨 받아들이는 영접의 마음이 되게 하소서! 당신 말씀 피리에 춤추게 하소서!

세상 죄악의 곡소리에 가슴을 치게 하소서!

아픈 이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부활하신 당신과 함께 기쁨을 선포하게 하소서!

바로 지금이 말씀을 영접하는 순간이요, 바로 오늘이 당신을 만나는 날이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 임과 더불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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