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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하느님의 자비 주일 (정삼권신부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0 조회수347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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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  축 부활  ♬♪♬♪♬♪♬♪♬♪♬♪♬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의 자비 주일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품으로 달려갑시다


주님 부활의 기쁨을 경축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 이 주일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에 따라 ‘하느님 자비의 주일’로 지냅니다. 이는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 성녀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성녀는 생전에 계시나 환시 같은 체험을 통해 모든 영혼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내 영혼 안에 하느님의 자비’란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상(상본)이 부활 후 첫 주일날 축성되기를 바란다. 그 주일은 자비의 주일이 될 것이다. 내 자비의 축일이 모든 영혼을, 특히 불쌍한 죄인들의 피난처, 은신처가 되기를 바란다. 그날 나의 부드러운 자비의 심원이 열릴 것이며, 네 자비의 샘으로 다가오는 영혼들에게는 은총의 전 대양을 쏟아 부을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하는 영혼은 죄와 벌의 완전한 용서를 얻을 것이다. 그날 은총이 흘러내리는 거룩한 수문이 모두 열린다. 지은 죄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죄인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여라. 내 자비의 축일은 나의 온 세상을 위한 위로의 심원에서 나왔으며 나의 부드러운 자비의 거대한 심원을 확인해 줄 것이다.”

....... 죄인인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는 헤아릴 길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건네시는 말씀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

우리 모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품으로 달려갑시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자비로운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아멘.

(정삼권신부님 강론 글 중에서)
 




[4월 11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20,19-31>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토마스 사도는 스승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고 밖에 나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서워 숨었지만, 토마스는 바깥소식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토마스가 돌아오자, 제자들은 그를 힐책합니다. ‘스승님께서 오셨더랬다.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토마스는 반발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바깥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진정 부활하셨다면, 그분의 손과 발의 상처를 본 뒤에야 믿겠다.’ 그는 너무 똑똑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습니다. 그를 돌릴 수 있는 분은 스승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한 번 더 나타나십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의 두 번째 발현에서 마음이 바뀝니다. 그분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했기에 바뀐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에서 마음을 바꿀 토마스가 아닙니다. 그의 변신은 예수님의 애정에 있습니다. ‘의심 많은’ 자기를 위해 한 번 더 발현해 주신 ‘스승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그러기에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실제로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고, 우리는 다만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진심으로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감동을 주는 사랑의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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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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