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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특별은총과 교회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0 조회수829 추천수16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8부 축제 내 토요일 - 특별은총과 교회

 


 

아씨시에 있는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벽화는 지오또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 거지가 무너져가는 성당을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그림이 눈에 띱니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기도 중에 계시를 받고 프란치스코 회의 회헌을 쓰게 됩니다. 당시 교황님이 계신 곳은 라떼란 요한 성당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제자들과 함께 로마로 수도회를 인준받기 위해 올라갑니다. 지금도 라떼란 성당 앞쪽에는 라떼란 성당의 크기에 놀라는 프란치스코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거지처럼 동냥하며 사는 가난한 수도회의 정신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자체도 부와 권력으로 조금은 부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도 엄격한 수도회 회칙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꿈을 꿉니다. 한 거지가 무너져가는 라떼란 성당을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교황은 그 거지가 회칙의 인준을 위해 자신을 찾아왔던 프란치스코였음을 깨닫고 그를 다시 불러들입니다. 부와 권력으로 무너져가는 교회를 재건할 사람이 바로 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오또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지오또의 그림을 볼 때 정말 놀라운 것은 프란치스코가 라떼란 성당을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고 있는데 그의 발은 성당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성당 밖에서 성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성당 안에서 성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때는 개인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오상의 비오성인의 예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비오 성인이 오상을 받았을 때 악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그가 신자들과 미사 하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교회의 결정에 순명하고 몇 년 간을 혼자 다락방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이 교회에 순명하는 모습을 본 바티칸은 비오 신부님의 기적이 악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다시 신자들과 미사를 하도록 허락해 주었고 그가 돌아가신 후에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어쨌거나 이것도 역시 교회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알아보지 못한 예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역시 교회가 그 영성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교황님께 특별한 꿈을 꾸게 하시어 그 수도회를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은 이렇게 개인적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이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교회가 자신을 박해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복음이 선포되고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도 무언가 깨달았습니다. 교회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뛰쳐나갔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세우려 했습니다. 이것이 성인들과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입니다. 교회도 하나고 믿음도 하나고 예수님도 한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에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아니 자신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마귀 들렸던 마리아나 사도도 아닌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기분 나쁜 것입니다.

답답하신 예수님은 직접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증언이 참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사도들도 직접 예수님을 체험하고 그들의 증언이 참이었음을 받아들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교회에 함께하고 있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아무리 큰 특별은총이 주어졌더라도 교회를 떠난다면 주님의 뜻에 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위해 교회를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태리 란치아노에 가면 어떤 사제가 성체 성혈의 신비를 믿지 못하여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 것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교회가 믿지 못하면 은총을 통해서라도 믿도록 만드십니다.

영성의 단계로 보면 최고의 경지까지 올랐던 아빌라의 데레사는 죽기 직전 자신이 그런 경지까지 오르게 되어서 감사한다는 말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교회의 딸로 죽는 것이 행복합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있으면 틀림없습니다. 교회를 떠난 개인적인 영성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오류 없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항상 교회의 아들, 딸들로 남아있기를 결심합시다.

 

 

<<짧은 묵상>>

예수님께서는 일곱 마귀 들렸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가장 먼저 발현하시고, 또 열두 사도에 들지도 않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들이 사도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전하자 사도들은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교회의 기둥이고 교회를 이끌 주춧돌들인데 자신들보다 죄인이었고 특히 당시엔 사람 숫자에도 넣지 않았던 한 여자에게 나타나거나 예루살렘을 떠나가던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은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두 제자의 증언을 확증하십니다.

어떤 수도회나 단체들은 자신들이 받은 계시를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고 또 교회가 자신들을 박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은 잘 믿으려하지 않는 사도들에게 나타나 결국 그들이 전한 계시들이 참다운 것이었음을 일깨워주십니다. 만약 진정으로 주님의 계시를 받았다면 지금 교회로부터 인정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언젠가는 교회를 위하여 그 진실을 밝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상의 비오 성인이 그러셨고 쟌 다르크 성녀처럼 수백 년이 지나서야 교회에서 인정되기도 합니다.

신랑이 신부를 잊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도 자신의 교회가 오류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이유는 순전히 그들의 오류를 바로잡아주고 교회를 잘 이끌어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이끄는 사람들의 신앙의 정도에 상관없이 그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주어서 교회를 바로 이끌어가게 하십니다. 이는 순전히 교회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교회를 이끌어가는 이들에게 거저 주시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오늘 우리는 불신앙으로 뭉쳐있었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발현하시는 그리스도를 보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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