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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별난 기도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01 조회수438 추천수3 반대(0) 신고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⑬        



                                                                 별난 기도



언젠가 한번 천안에 있는 한 대학교를 간 일이 있습니다. 그 대학의 교수 한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교정의 한 벤치에 앉아 맑은 봄 햇살이 쏟아지는 길을 경쾌하게 오가는 수많은 대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묵주를 손에 쥐었습니다.

그런데 길 가운데에 플라스틱 빈 물병이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물병은 학생들의 발길에 채여 한쪽 길가로 이동되었습니다. 그 물병 앞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냥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물병을 아예 보지 못하거나, 보아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무심(無心)'만이 오갈 뿐이었고, 그 버려진 빈 물병은 누구에게도 상관이 없는 사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빈 물병을 주워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몇 걸음 떼었다가 도로 벤치에 앉았습니다. 인터뷰할 교수와의 약속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묵주를 쥐고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길바닥에 버려진 저 빈 물병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학생을 보게 해주십시오. 그런 학생이 제 눈앞에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성모 마리아님, 도와 주십시오."

혼자 슬며시 웃음을 머금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늘 참 별난 기도도 다한다는 생각, 이런 기도를 해보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 기도는 점점 더 절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약속 시간이 거의 되어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내 손으로 그 물병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마지막일 것 같은 한 여학생이 저만치에서 바삐 오고 있었습니다. 일단 몇 걸음 지나쳤던 그 여학생은 뚝 걸음을 멈추더니 되돌아와서 그 물병을 집어들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학생의 뒷모습을 고즈넉이 바라보면서 입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뇌었습니다. 내 별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지요하(소설가·태안성당)


*<대전주보> 2010년 2월 27일/사순 제2주일 | 5면   




                                                                    별난 기도
                                                                    어느 대학교 교정에서    



언젠가 한번 천안에 있는 한 대학교를 간 일이 있습니다. 그 대학의 교수 한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교정의 한 벤치에 앉아 맑은 봄 햇살이 쏟아지는 길을 경쾌하게 오가는 수많은 대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묵주를 손에 쥐었습니다.

그런데 길 가운데에 플라스틱 빈 물병이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물병은 학생들의 발길에 채여 한쪽 길가로 이동되었습니다. 그 물병 앞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냥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물병을 아예 보지 못하거나, 보아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무심(無心)'만이 오갈 뿐이었고, 그 버려진 빈 물병은 누구에게도 상관이 없는 사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빈 물병을 주워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몇 걸음 떼었다가 도로 벤치에 앉았습니다. 인터뷰할 교수와의 약속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묵주를 쥐고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길바닥에 버려진 저 빈 물병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학생을 보게 해주십시오. 그런 학생이 제 눈앞에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성모 마리아님, 도와 주십시오."

혼자 슬며시 웃음을 머금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늘 참 별난 기도도 다한다는 생각, 이런 기도를 해보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 기도는 점점 더 절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약속 시간이 거의 되어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내 손으로 그 물병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마지막일 것 같은 한 여학생이 저만치에서 바삐 오고 있었습니다. 일단 몇 걸음 지나쳤던 그 여학생은 뚝 걸음을 멈추더니 되돌아와서 그 물병을 집어들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학생의 뒷모습을 고즈넉이 바라보면서 입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뇌었습니다. 내 별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 대전교구의 27일치 <대전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이어서 여기에도 올립니다.


10.03.01 12:52 ㅣ최종 업데이트 10.03.01 12:52
청원기도, 묵주기도
출처 : 별난 기도 - 오마이뉴스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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