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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의 미사 성제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9 조회수542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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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매일의 미사 성제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셨다"(갈라티아 2,20)


미사 성제가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는 성인들이 매일 때로는 가능하면 매일 몇 번씩 미사에 참례하기를 왜 그리도 열렬히 원했고 노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는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가 고해하러 온 이에게 말했다.
"만약 사람들이 미사 성제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미사 때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당으로 몰려와서 경찰의 동원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도 미사 성제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크리스챤들 중에 속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이 매일의 미사 또는 매일 몇 번의 미사에 참례하게끔 그들을 이끌었던 열정이 우리에게는 결핍되어 있을 것이다.


숨겨진 종(鐘)

성 아오스딩은 자기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칭송을 하였다. "오, 주님, 저의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제대에서의 신성한 제사에 참례하지 않고 보낸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보통 하루에 두 차례의 미사에 참례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병들었을 때에는 수사 신부 한 분에게 부탁하여 자기 방 안에서 미사를 바쳐달라고 부탁하였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매일 아침 미사를 바친 후에 감사를 위한 또 한 번의 미사에서 복사하였다.

목동이었던 성 파스칼 바일론은 양을 돌보느라고 자기가 원했던 것만큼 자주 미사에 가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성당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양들 사이의 풀밭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 앞에서 꿇었다.  이렇게 멀리서 미사를 바치는 사제를 따랐다.  이 얼마나 다정함에 찬 성인이며, 성체께 대한 대천사와 같은 사랑인가?  임종에 가까워 그는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서 동료들에게 속삭였다.
"나는 나의 불쌍한 생명을 예수님의 희생과 일치할 수 있으니 기쁩니다." 그리고 성체 축성 시각에 숨을 거두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그는 매일 새벽 동이 트자말자 집을 나서서 성당으로 갔다.  하루는 그의 할머니가 왜 그렇게 매일 일찍 나가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학교 가기 전에 하느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세 번의 미사에 참례하러 갑니다."라고 하였다.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가 어릴 때 이미 미사 성제에 참례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 당시 그가 살던 지방에서는 다음과 같음 풍습이 있었다. 즉 미사에서 복사하려는 소년은 아침 일찍 사람들을 깨우기 위하여 작은 종을 울리면서 약 15분 간씩 마을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베드루 쥴리안은 다음 날 미사에서 꼭 복사할 수 있기 위하여 전날 저녁에 작은 종을 숨겨놓곤 하였다.

8명의 자녀를 두었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성녀 말가리따는 매일 미사에 갔으며 그녀의 자녀들을 데리고 갔다.  자녀들이 미사 경본을 귀중하게 여기게 하기 위하여 그 작은 경본들을 손수 보석으로 장식해주었다.


"비효율적인 시간 사용"

우리의 하루 일과를 잘 꾸려감으로써 미사에 갈 수 있는 시간을 내도록 하자.  너무 바쁘다는 말을 하지 말자.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들에 대해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이다" (루카 10,41-42).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의 의무들을 소홀함이 없이 미사에 갈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성 요셉 꼬똘렝고는 모든 이들에게 매일 미사를 권했다.  즉 선생들, 간호부들, 노동자들, 의사들, 그리고 부모들에게.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성인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시간을 잘못 쓰는 거예요!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이것이 대개의 경우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미사 성제의 무한한 가치를 안다면, 미사 참례를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고 모든 수단을 써서 시간을 내려고 할 것이다.

세쩨(Sezze)의 성 챨즈가 그의 수도회를 위한 구걸을 하면서 로마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더 많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 성당을 방문하곤 하였다.  이렇게 미사 참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거양 성체 때 사랑의 화살이 그의 심장을 뚫었다.

바올라의 성 프란시스도 매일 아침 성당에 갔는데, 아침에 거행되는 여러 번의 미사를 모두 참례하였다.  성 알로이시오 공사가, 성 알퐁소 로드리게즈, 그리고 성 제랄드 마옐라도 가능한 한 많은 미사에 참례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열절한 신심으로 참례하였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그들 때문에 성당으로 몰려들었다.

가경자(可敬者) 아기 예수의 프란시스는 매일 열번의 미사에 참례하였다.  혹 그보다 적은 횟수밖에 참석하지 못했을 때에는, "오늘 나는 아침을 제대로 못먹었다."라고 말하였다. 
삐에뜨렐치나의 비오 신부 역시 매일 많은 미사를 드렸다.  과연 아르스의 성인 신부가 말했듯이 "미사는 성인들의 신심이다."


"나는 10 마일(=16 km)을 걷겠습니다"

거룩한 사제들이 미사를 거행하는 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에 대해서도 꼭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미사를 드릴 수 없을 때에는 큰 고통을 느꼈다.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비앙끼는 동료 수사 신부에게 말하였다. "내가 더 이상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라는 말을 당신이 듣거든, 나를 죽은 사람으로 간주하시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가 9 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있을 때 가장 큰 고통은 미사를 드릴 수 없고 성체를 모실 수 없는 것이었다라고 말하였다.

성인들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라면 장애물들이나 어려움들을 개의치 않았다.  예를 들면, 성 알퐁소 드 리구오리가 나폴리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심한 복통이 왔다.  그를 동행하던 수사는 성인께 멈추어서 진정제를 드시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성인은 그 날 아직 미사를 드리지 않았으므로 즉시 대답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나는 미사 성제를 바치기 위하여 이 상태에서 10 마일이라도 걷겠습니다."  당시에는 영성체 전의 공심재를 자정부터 지켜야 했으므로, 성인은 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공심재를 깨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이 좀 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당을 향해서 계속 걸어갔다.

카푸친 회 수사 신부였던 브린디시의 성 로렌스는 한 번은 이단의 지방을 거쳐가게 되었다.  이 곳에는 가톨릭 교회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성인은 성당이 있는 곳까지 40 마일(=64 km)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저에게 미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

성 프란시스 드 살레즈는 프로테스탄트 도시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 강 건너 편에 있는 성당까지 가야 되었다.  그런데 가을의 우기(雨期)가 되어서 강물이 불어나 작은 다리가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성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리가 있었던 곳에 통나무를 갖다 놓고 그 위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자 얼음과 눈 때문에 미끄러워서 강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그러자 성인은 통나무 다리에 걸터 앉아 기어서 건너갔다.

우리가 제대 위에서 갈바리아 산 위의 희생을 재현하는 미사 성제의 신비를 충분히 묵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지고(至高)한 하느님의 사랑의 경이에 대하여 충분한 신심을 가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성 보나벤뚜라는 "미사 성제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 모두를 펼쳐놓는 하느님의 역사(役事)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은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모든 혜택들을 종합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 요한 보스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열절히 권고한다. "미사 성제에 가도록 많이 애쓰십시오.  평일에도 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목적을 위해서 불편함을 좀 겪더라도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은 주님께로부터 온갖 축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11월 9일, 화요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17,7-10>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오늘의 묵상]
늘 베푸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늘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쉽게 걸립니다. 동물 가운데에서도 ‘애완용 개’만이 치매에 걸린다고 합니다. 받는 생활에 ‘젖어 살면’ 몸은 어른이 되어도, 마음과 정신은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자기 것을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누고 베풀며 사는 이가 건강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꼭 쥐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지요? 화려한 자리에 앉은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업적과 이름은 남기고 싶어 하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는 데에는 인색합니다.

행복은 주님께서 주십니다. 미래 역시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주님의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매일 말씀의 실천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며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겸손해집니다. 움켜쥐고 있기에 ‘영적 치매’에 걸립니다. 엉뚱한 말을 하고,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요구하고, 더 좋은 일만 바랍니다. 나누는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보답이 돌아옵니다. 이 ‘사실’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늘 신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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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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